인간관계... 인연도 나를 사랑하듯이
평생 인연도, 시절 인연도 모두가 나를 사랑하듯 사랑해야 할 소중한 사람이다.
by 소망
22년 가을, 댄스를 다시 시작하여 정착한 곳은 다양한 캐릭터의 언니들이 모이는 자치센터였다.
좋아하던 댄스에 대한 갈증에 목말랐으나, 우울증 극복 후,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조용히 적응기를 가지려 했다. ㅡ아프기 전의 나는 오픈형이라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가는 성격이었다.ㅡ 말없이 눈치만 살필 때 먼저 다가와준 한 언니가 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다가와 호감을 갖게 되었고 빠르게 가까워졌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나는 ㅡ애정 결핍 정서와 관계 역학의 무지로 인함ㅡ 매우 조심스러웠으나 직장생활에서의 인간관계와는 다른 또래 아줌마들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를 느꼈다.
서로가 익숙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면 건강한 관계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자칫 친숙함으로 포장해 실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니 상처받는 일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점점 가까워지면서 서로가 즐거우니 그 사이에서 사소한 감정들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했다.
"우리 넘 붙어 다니는 거 아냐!"
"거리 두기가 필요해." 하며 약간의 경계 태세를 갖추었었다. 상처받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다 그녀가 시절 인연을 언급했고, 우리는 동상동몽을 꾸듯 비슷한 생각을 했다.
톱니바퀴가 물리듯 맞는 면이 있어 급격히 친해졌겠지만, 가만 보니 우리는 서로 같은 경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우려하는 점을 그녀도 생각하고 있었다.
가까워지면 좋든 나쁘든 서로의 감정에 불쑥 들어가 영향을 끼칠 때가 생긴다.
우리가 이제 돌아볼 시기가 된 듯했다. 빨리 끓는 양은 냄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또 비슷한 성향은 비슷해서, 완전 다른 성향은 완전 달라서 생기는 약간의 마찰도 생긴다. 마찰이 찰싹거릴 때는 알아채고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
댄스 하러 갔다가 그 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한 주 동안 그녀는 휴가를 가졌고 댄스도 쉬었다. 주 3일을 붙어 다니다 약 2주 만에 만난 것이다.
그녀의 휴가 기간 동안, 관심 밖인 척 그녀의 집 앞을 지나쳐 댄스 하러 오고 갔다. 톡도 전화도 일절 안 했다. 그냥 푹 쉬라는 의도였다. 한 편으로는 그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휴가는 잘 지내는지, 어디로 여행을 간 건지, 건강은 잘 지키고 있는 건지 등등 궁금했지만,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하겠지 생각했다. 그녀도 같은 감정일까 추측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도 내가 그 길을 지나칠 거라는 생각을 했겠지.
강습이 있는 평상시의 그날은 하는 일이 있어 댄스가 끝나기 30분 전쯤에야 온다. 휴가가 끝나고 나올 때라 당연히 늦게 오겠지 했다. 그날따라 나도 시작 시간 임박해서 갔다.
후다닥 댄스화를 갈아 신고 자리에 섰다. 근데 뒤쪽에서 낯익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녀였다. 반가워서 달려가듯 다가갔다.
"ㅇㅇ님, 왔네?" 웃으며 인사했다.
웬걸~ 그녀의 반응은... 고개만 슬쩍 들어 보고는 "어~. 왜?" 하며 시큰둥했다.
'헐~ 뭔 시추에이션?' 하면서도
"반가워서 그러지." 했다.
그녀는 씨익 웃고 만다. 나는 멋쩍어 내 자리로 돌아왔다.
어떻게 지냈는지, 어디 다녀왔는지 궁금해할 말이 많았는데... 살짝 상심한 탓에 끝나고도 묻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정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고 인사한다. 마음이 더 상했다.
끝나고 다른 친구 ㅡ쓰리 라인녀ㅡ가 셋이 치맥 하자는데 처음으로 거부란 걸 하고 터덜터덜 혼자 와버렸다.
전화가 연신 터졌다. 어디까지 갔는지 역 앞 페리카나로 오란다. 힘든 양, 풀 꺼진 소리로 거절하고 집으로 와버렸다. '이 나이에 뭔 유치함!'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다음날, 댄스 시간에 또 만났다.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 갔다. 조용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어제 일부터 꺼냈다. 평소에 말이 적은 편인데 말 많은 걸 보니 내 기분이 상한 걸 눈치챘던 모양이다.
끝나고 그냥 오려했는데, 미적거리며 쉬다 가자고 한다. 공원 벤치에 앉았다. 혹시나 하며 챙겨 온 쑥떡과 고구마, 초콜릿을 꺼냈다. 그녀나 나나 그런 자잘한 나눔과 휴식 시간을 좋아한다.
별 대수롭지 않은 말들로 핑퐁 하다가... 어제 일을 직구로 던졌다.
"어제 내가 반가워 쫓아갔는데 '어. 왜?' 라니 내가 되게 멋쩍었네요."
그녀는 연신 웃으며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그리고 자기 말을 들어보라며 말을 이었다.
어제는 오전에 일을 마쳤기 때문에 일찍 왔다고 했다. 오자마자 내가 왔는지 둘러보았다고 했다. 내가 안 보여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가 마침 들어오는 나를 보았단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를 그냥 지나치더라는 것이었다.
급히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나를 보며 아는 체를 하려 했던 그녀도 살짝 기분이 상했나 보다. 끝난 후 맥주라도 하며 휴가 기간의 소회를 풀려고 했단다. 그런데 나도 그녀도 비껴가는 눈에 마음이 들썩거렸던 것이다. 이런 것이 매우 사소하게 생기는 오해렸다.
우린 웃으면서 그랬구나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도 휴가 동안 주변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옛 친구나 모임 등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단다.
이런 감정은 말을 해서 풀어야 한다. 쌓아서 묵히면 커지는 오해의 마음. 나는 소통으로 풀고 가자 주의지만, 혹시 나의 직설법이 부담스러우면 말을 해주시오 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니 좀은 유치한 나의 삐짐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 사교적이긴 하나 내게는 유난히 신중한 듯한 그녀다.
그녀도 나도 서로 호감은 있고 좋은 사이를 원하는 건 맞는다.
우리는 서로의 오해를 풀고, 쿨하게 헤어져 돌아왔다.
오후에 톡으로 피드백을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건 좋은 일이죠. 상대를 알아야 이해와 존중도 더 쉽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의 관계도 배움의 자세로 정성스럽게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은 투박한 내 표현도 고쳐나가도록 할게요.' 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해 쓰지만 님은 답 안 써도 됩니다.'까지 덧붙였다.
역시 그녀도 섣부르지는 않다. 즉답은 피하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다음날 아침에 문자가 왔다.
'고맙소.
관심을 가져 준 것에......
마음으로 눈길을 준 것에......
그리고 무던한 내게 다시 호흡을 불어넣어 준 것에 대해......
이 모든 것들과 아침을 맞으면서 문득 다시금 그댈 생각하게 되고 그 마음에
고맙소.'
말이 적은 그녀가 이 몇 마디를 쓸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생각하니 고마웠다. 한 마디라도 진심이 느껴지면 나의 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어찌 마음과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있겠소.
무던함과 반짝이는 미소를 가진 님께.'
그녀도 어쩌면 나보다 더 상처가 많을 수 있다. 내가 피상적으로 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분이 나쁠 때는 생각에 빠져 있는 어두운 모습도 보이지만, 좋을 때는 표정이 먼저 환하게 말을 하는 그녀이다.
인간관계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마음을 열 때는 확실히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명하게 보인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작은 오해라도 잔 찌꺼기가 남지 않게 탁탁 털어야 한다. 새로운 마음의 싹이 틀 수 있도록 말이다.
작은 오해도 마음의 문을 닫으면 쉽게 커지지만,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큰 오해도 쉽게 풀려 이해가 된다.
by 소망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일단 짧은 시절 인연이 될지라도 존중하고 신뢰하며 나를 사랑하듯 같은 마음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로 젊은 날 늘 상처받던 이 마음도 스스로 보호해야 하지만, 이제는 상대의 마음도 나의 마음 이상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 평생 인연도 중요하나 시절인연이 될지라도 지금 인연으로 내게 다가온 사람도 나를 사랑하듯 사랑해야 할 소중한 사람이다.
60년을 살아도 유치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은 변하지 않아서일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