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한 관심, 사소한 마음
몇 년 전, 옛 친구가 호들갑스럽게 자랑하며 나를 데려간 곳이 공릉 역 근처 퓨전 식당이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친구인데 말이지. 그 친구 입맛을 사로잡았다면 음식 맛이 중간 이상은 당연했다.
그 식당은 퓨전 짬뽕집이다.
다양한 짬뽕은 국물 있는 파스타처럼 부드럽고, 뜨끈함은 중국식 직화 짬뽕 같다. 시그니처인 백뽕의 크림맛이 감도는 부드러운 국물맛은 크림 맛이 느끼할 듯하나 매콤한 맛을 가미해 느끼함을 싹 지워주고 다양한 해물은 담백한 맛을 살려주었다.
내가 댄스강습을 시작하면서 그 식당이 바로 근처임을 몇 달 전에야 알았다. 댄스 친구와 둘이 가서 먹은 후 한 달 뒤쯤에 또 셋이 들렀다. 그리고 한참을 잊었다.
얼마 전 댄스가 끝난 후 뜨끈한 짬뽕이 생각나 친구와 함께 들렀다.
식탁 위에 놓인 커다란 메뉴판을 보며 우리가 먹었던 메뉴를 찾았다.
아차, 우리 둘 다 그 시그니처 백뽕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잊었다. 아니, 그저 그림만 보고 시키니 그것이 백뽕인지 뭔지 입만 말했을 뿐, 기억에 없었다. 그런데 다시 와 시키려니 도대체 뭔지 가물가물... 으~~ 인지 노화를 실감했다.
"우리 뭐 먹었지? 이거? 이건가? 부드러운 크림맛이었는데..."
"백뽕?"
메뉴판을 보고 설명을 봐도 혼선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이건가 저건가...
두 번 먹었었는데 까맣게 잊어버리는ㅡ차로 달리기는 해도 차는 모르는ㅡ 아줌마 둘임에 틀림없었다.
우리가 백뽕을 가리키며, 긴가 민가하고 있을 때, 분명 여사장님이야.ㅡ예전에도 있었고 젊은 부부가 하는 듯했으니까ㅡ 그 주인장께서
"손님들 전에 그거 드셨어요." 한다.
"아하 그랬군! 그럼 하나는 이 로제뽕이다."
우리는 두 개를 주문했다.
"우리가 왔던 게 적어도 두 달은 넘었는데, 우째 기억을... 호 대단하다. 그지?"
둘이 속삭였다.
주인장께 엄지를 날리며,
"어떻게 기억하세요?"
주인장이 빙그레 웃으며 덧붙인다.
"전에도 그 자리에 앉으셨는걸요."
메뉴야 시그니처라 보통 그것이 많이 팔리니까 넘겨짚은 것일 수도 있고, 작은 식당이라 해도 인생맛집이라고 수많은 손님들이 오고 가는데, 도대체 어찌 기억을 하는 건지...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걸요." 하니 씨익~ 웃기만 하시네.
대단히 총명한 주인장 아닌가! 지나치는 손님들이 무척 많은데 우째 다 기억을...
우리는 둘이 놀라 눈만 크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무언의 약속, '여기는 이제 우리 단골이야.'
혹시 우리가 그리 눈에 띄는 정신 사납게 한 손님이었나....?
메뉴가 나오니, 친구는 속부터 뜨끈함이 채워져 있는 부드러운 크림 짬뽕 국물부터 신나게 먹었다. 추운 날에는 이래야 제맛이라며... 맛있게 싹싹 비웠다.
맛도 맛이지만, 지나치는 손님을 기억해 준 고마움에 우리는 '단골'로 지정했다.
역시 식당 서비스업종에서 손님을 기억해 주는 관심은 사장님의 미덕인가!
눈썰미 좋은 것은 단골손님을 확보하는 데 큰 강점이 된다.
사람의 마음이 이러하다.
'손님 전에 그 자리에서 그거 시키셨어요.'란 말 한마디는 주인장의 손님에 대한 관심이 되었고 그 관심으로 우리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주인장은 단골손님이 생겨 이득이요,
손님은 훈훈한 마음 얻어 이득이다.
세심한 관심으로 따듯하고 훈풍이 도는 사회가 되는구나!
사람의 마음이 거듭~~ 이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마음조차 스쳐 지나가는 인과(因果)의 바람임을... 그래도 기왕이면 사람 사이 이런 훈풍이 낫지 않을까...
그날, 여사장님의 이 두 마디에 내 마음이 반했다.
"손님들 전에 그거 드셨어요."
"전에도 그 자리에 앉으셨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