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역 가게 사장님의 피곤한 하루
지하철 역에는 옷을 파는 가게, 모자 등 소품을 파는 가게, 신발을 파는 가게 등이 있다.
베이커리의 구수하고 달콤한 향은 고픈 배를 부르고 자동반사로 향하게 한다.
지난 연말, 댄스 강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환승 통로를 이동하는 중 코너에 있는 옷 가게를 빠르게 훑었다. 댄스 끝나고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좀 늦은 시간이라 옷 가게 사장님이 밖에 진열된 옷들을 안으로 들이시며 마감 정리를 하고 계셨다.
남자들 수면 바지를 살까 했는데 컬러와 프린트가 예쁜 것이 눈에 딱 띄었다.
"사장님, 이거 남녀 공용인가요? 아니면 남자 거 따로 있나요?"
소리를 들은 체구가 좀은 있으신 여사장님, 걸어오시는 포스가 남달랐다. 하루 피곤의 무게가 온 발에 쏠린 듯 턱턱 소리를 내시며 다가오셨다.
"이게 남자 거예요."
하며 내 눈에 거의 하나도 안 예쁜 시커먼스 두 개를 보여주신다.
"어, 이것이 남자 거예요?"
영 맘에 들지 않는 시커먼스!
"근데 이거랑 길이가 다른가요? 이건 남자는 못 입나요?"
내가 보던 바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바지를 시커먼스 옆에 대어 보았다.
"길이 차이가 안 나는데요."
"이게 남자 거라니까~ 내 말만 믿어요. 남자 건 점잖아야지. 그런 걸 입고 어떻게 나가나. 이렇게 점잖은 색을 입어야 집 앞에 담배라도 피우러 나갈 거 아냐?"
사장님의 육중한 포스와 퉁퉁거리는 음성이 영 불편했다. 말도 하대하다 높였다 하면서 연신 불쾌한 어투로 말씀하신다.
그 바지는 검은색과 쥐색이 섞여 시커먼스에다가 펼쳐보니 통도 훨씬 넓어 클 것 같았다.
"이게 이쁜데. 이건 여자 거예요?"
재차 물었지만, 믿고 가져가라고만 하시고는 사려면 사고 말 거면 말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80 먹은 남자가 이런 거 입어야지. 그렇게 이쁜 걸 어떻게 입나..." 하신다.
'엥~ 80대이시면 더 밝고 화사한 것을 입으시는 게 좋지 않나...'
'웬 80?'
나이를 말하지도 않고 남자 입을 거라고만 했는데, 당황스러웠다.
"50대가 입을 건데요."
그랬더니, 그제야
"그럼 아무거나 가져가요."
나도 선택의 기로에서 늘 결정장애가 있으나, 후딱 선택하고 와야겠다 싶었다. '에라~ 작으면 내가 입지.' 그러고는 이쁜 것을 선택했다.
"혹시 계좌이체 되나요?"
고른 바지를 받아 들고는 계산대로 가신다.
따라가니 새마을ㅇㅇ 계좌를 보여주신다.
별 상관없이 빨리 송금하고 나오면 되는데... 불편한 감정을 묻고 상냥하게 물었다.
"사장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역시 퉁명스럽게
"그럼 안 피곤하겠어요! 힘들어 죽겠네."
"그러시군요~~"
난 사장님이 점포 문 닫을 때 바지 산다고 해서 귀찮으신가 생각했다.
송금하는 동안, 바지를 봉지에 담으며 계속 읊으셨다.
"하루 종일 이러고 있으니 안 힘들어! 게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오며 가며 계속 가게 문 두드리네. 들어오면 화장실 어디냐고 물어보는데... 자기들이 찾아보면 되지. 꼭 문 두드리고 물어봐. 그러니 하루 종일 힘들지."
사장님은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고 입이 나온 채 계속 퉁퉁거리셨는데 그 이유가 그거였다.
한편으로 나 때문은 아니구나 안심이 되었다.
'이그~, 오고 가는 사람들은 왜 화장실을 그리 물어봐대서 이 사장님을 이리도 힘들게 했을까.'
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화장실 급한 사람들, 특히 이 환승역에 초행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다급한 일인가.
또 이 사장님 입장에서 보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사장님 입장도, 환승하는 이용객들 입장도 이해는 간다.
사장님이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환승객들은 묻기 전에 화장실을 스스로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
매상을 올려야 하는 가게 사장님은 손님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매상 손님보다 화장실 찾는 사람이 많다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사장님 입장에서 환승객을 생각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화장실 위치를 큰 종이에 써서 가게 문에 붙여놓아도 되고, 역 사무실에 건의해서 화장실 안내도를 부착하는 방법도 있다.
사장님은 하루 종일 장사하느라 힘들었는데, 부가적인 일로 더 귀찮고 피곤하셨던 것이다.
그 환승 통로에는 가게가 하나라 하루 종일 물어오는 사람께 답하다 보면 당연히 짜증도 날 것 같다. 한두 사람도 아니었을 테니 사장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송금하고 이체 결과를 보여드리니
"내 핸드폰에서 띡소리 나면 돼요."
그때 띡 소리가 나며 그분 핸드폰이 환해졌다. 그래도 물건값이 들어가 그런지 좀 표정이 풀리시네. 전부터 느꼈는데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물건값이 적고 많고를 떠나 자신께 돈이 입금되면 무척 기뻐하신다.
바지를 담은 비닐봉지를 받아 들고
"사장님 오늘 많이 힘드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편히 쉬세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손님의 입장인 나는 불친절을 넘어 처음부터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피로감, 계속되는 퉁명한 언행에 살짝 기분이 언짢아 '내가 왜 굳이 여기서 사야 되나' 생각하고 그냥 와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다스리고 상냥하게 물었고, 사장님의 나름 힘들었던 사정을 알았다. 들었기에 이해도 할 수 있었다. 몰랐다면 집에 가는 동안 불쾌감이 남았을 수도 있었다.
참 단순하신 사장님,
귀찮고 짜증 나니까 짜증 내고, 물건 팔고 돈 들어오는 띡소리 들으니 표정이 밝아지시네. 내일 아침에는 활짝 웃으며 점포 문 여시겠지...
그러나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짜증을 표현하는 건 좀 그러네. 손님께 조금 더 친절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입장과 생각들이 있다.
작은 일이라도 서로서로 입장 바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때론 입과 귀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말이 필요할 때는 입을 열어야 하고 듣고 이해하는 귀도 있어야 한다.
지하철에는 화장실, 사무실, 출구 등의 위치를 나타내주는 조감도가 있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곳은 잘 알겠지만, 낯선 곳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살펴보는 주의가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