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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트 7... 진정한 용서

용서는 연민과 사랑의 결과이지만...

by 소망

진정한 용서란 無입니다.



소소한 생활 속 이해와 용서가 필요한 현장이 있지만, 대화로 풀 수 있고 쿨하게 용서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 잊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절대 용서 못해.'




용서, 존중, 연민, 사랑, 감사. 수용 등의 덕목에 대한 글은 무겁습니다.


제 연재 브런치 북 '삶이라는 길고 긴 연재'의 소타이틀

'라이프 인사이트'는 삶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지혜를 씁니다.

'에피소드 컷'은 최근 생활 경험과 그를 통해 깊이 새기게 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무거운 가치들을 어찌 진실을 담아 진정성 있게 쓸까는 고민하게 됩니다. 자칫 이론으로 흐를 수 있고 허위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읽을 때 도움이 되려면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경험은 진실해야 하며 책을 읽고 배운 이론에 멈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사이트에 경험만 넋두리하듯 늘어놓으면 식상할 듯하니 무거운 마음으로 써 갑니다.


지난한 삶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진국이죠.

고민, 깨침, 후회, 재건 등등의 과정은 우리 삶의 필수인가 봅니다.


가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엄중히 다루고자 합니다. 독자 분들의 가슴에 진실되게 다가가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엄밀히 말해 요즘으로 치면 내 어린 시절은 학대와 방임이었다. 그러나 더 오래전 시대는 요즘과 비교하면 더 심했다 말할 수 있다. 과거는 시대적 사회상이라 보면 용서랄 게 없다. 굳이 용서를 해야 한다면 내 마음을 녹여내야 할 뿐......



직장에서 딱 한 번, 복수하고 싶다고 눈물을 머금으며 차를 몰고 나올 때가 있었다. 엔간한 일에는 마음이 무력한 나에게 사람들의 음해와 질시와 모멸이 복수심을 자아내게 했다. 사실 지금은 그도 다 녹아버렸다.



결혼 후 어머니께 받은 모멸감이 컸다.

"가방끈이 길어 유세하냐"

"아들 둘 낳으니 네가 간이 부었구나!"

등 ㅡ이 글 노출되면 안 되지만, 이도 저도 그럴 수 있는 일이며 지금은 다 이해한다. 맘속에 딱히 찌꺼기가 없으니 쓸 수 있다.


나의 변화가 있기 전, 화병이 사라지기 전까지 진짜 억울하고 슬펐다. 내 병과 위 무력증의 원인이었다.


가방끈 길면 뭐 하고 간이 부었으면 뭐 하나... 바보처럼 늘 몰래몰래 울기만 했다.



이제 다 녹아버렸다.

위와 장을 지배하고 자율신경 실조증을 유발했던 나의 화가 언제부턴가 녹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이 변하고 치유되며 가장 먼저 온 변화였다. 어머니를 연민의 맘으로 보니 다 이해되었다.




마음의 응어리는 한(恨), 화(火) 내지는 분노이다. 갑자기 끓어올라 터지는 활화산이 아니고 은근히 데워지며 응축된 분노의 휴화산이다.


응축된 분노의 휴화산은 성게 가시 녹여내듯 녹여내어 흘려보내야 한다.


오롯이 상처는 받은 자의 몫이며 상대를 용서하는 것도 받은 자의 몫이다.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용서!

어떻게 해야 하나?

화는 어떻게 녹여내야 하나?


감정의 실체는 없다. 없음을 알아야 벗어날 수 있다.

지난 묵은 감정의 실체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흘러가는 구름을 잡을 것인가?

흐르는 물을 잡을 것인가?

흐르는 물을 잡아 가두면 썩듯, 우리 감정도 흘려보내야 썩지 않는다.

썩는 것은 나 자신이다.

과거와 현재의 감정, 그 포로가 되어 지금과 미래를 살아야 하는가 말이다.


"자네는 자네를 잡아 가두었던 적들을 용서했는가?"

"아니 나는 그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네."

"그래. 그렇다면 자네는 아직도 그들에게 잡혀있는 걸세." ㅡ읽었던 어느 글에서...


내가 상대를 용서할 때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고 나조차 용서받을 수 있다.



나는 '진정한 용서'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일상에서의 말에 담긴 의미가 아닌 진정한 용서는 내 분과 화를 푸는 것만이 아니다. 용서는 자신의 슬픔, 좌절, 모멸 등의 감정과 다시 만나기 위해 닫혀있는 마음을 열어야 하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자비롭게 내려놓아야 한다.


진정한 용서는 자비로운 실천이다.



원망과 분노도 시간이 흐르면서 희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희한하게도, 그런 나쁜 감정은 할아버지가 피다남은 종잇담배를 꼭꼭 싸둔 것처럼 꼬깃꼬깃 저 바닥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상대를 볼 때,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 다시 올라온다는 것이 문제다. 나의 경우 늘 그랬다. 털어내야 하는 것.



하나님 안에서 너와 내가 다르지 않기에 타인 존중이 나의 존중이 되듯ㅡ6회 참된 존중의 글ㅡ 용서 또한 같다. 삶에서의 지혜란 타자가 곧 나임을 아는 일이다.


용서를 생각할 때 올라왔다.


'나는 네 어마어마한 죄도 아무 대가 없이 용서했는데 너는?' 하는...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 죄를 용서함과 같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가 생각났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뭔데?'

'내 큰 죄도 묻지 않고 용서해 주셨는데...'


진정한 용서는 내 소관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용서는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 화가 녹아버려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도 안된다면,


상대의 행위에서 그의 카르마를 보아주고 인정해 주자.


그도 그의 카르마로 인한 것이다. 아마도 그가 지혜로웠다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겠지.

모두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세상이다.

그의 인생도 녹록지 않았음을 보아주자.

그도 연약한 인간이라 보아주자.

그도 흔들려 넘어지지 않으려 기를 쓰는 약하디 약한 인간이라 보아주자.

어쩔 수 없이 살고자, 밟히지 않으려 애쓰는, 자존심 지키고자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나보나 더 약한 그의 모습을 보아주자.

바로 연민이다.


강한 척하는 사람치고 진짜 강한 사람이 있을까.

자고로 꽉 차면 소리도 안나는 법이고 무거우면 들썩거림도 없지 않은가.

작은 개가 더 요란히 짖는 것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苦海를 헤매는 고된 인생, 불안으로 점철된 슬픈 인생이라 보아주자.

그리고 그도 언젠가 세상에서 흔적이 없어질 육신임을... 가엾게 보아주자.


나?

사람은 힘들 때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한다. '힘내세요'


나도 그렇다.

나는 나에게 줄곧 한다.

변덕스럽고 온전치 못한 사람이기에 늘 신발끈 고쳐 매듯 새로이 해야 한다. 계속...




화는 의식을 가진 인간에 대한 실존적 이해, 연민과 사랑으로 녹아내립니다. 용서도 말뿐이지 않을까요...


용서는 연민과 사랑의 결과이지만... 진정한 용서란 無입니다.


모두가 실체 없는 감정의 문제, 생각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하는 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 화가 녹아버려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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