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많은 것들
Written by 지랄방구
100명 혼숙 도미토리에 왔다. 그냥 도미토리라고 말하는거지, 대형 돔텐트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물난리가 날 때 이재민들이 이용하는 그런 공간.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 가족이 다 같이 격리된 그런 공간. 한 명당 8유로(약 1만원)에 매트리스 하나와 담요 2장을 주는 곳. '어떻게 이런 데서 자지?' 라고 말하기에는 이 곳까지 오는 길이 너무 험난했다. 뮌헨 중앙역에서 여기까지 트램으로 20분 걸어서 5분이었는데 트램에서 내린 순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앞으로 보조가방 뒤로 메인가방을 메고 그 위에 찢어진 우의를 입고 우산을 쓴다. 몸은 버려도 노트북은 버릴 수 없다는 듯 메인가방 깊숙이 전자기기들을 넣고 독일 특유의 장대비를 뚫고 우린 난민수용소 같은 이 곳에 왔다.
그런데 너무 천국같은 곳. 부러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된다.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되니 비 샐 걱정 또한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도착한 프랑스 젊은 애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남자애들은 아무데서나 바지를 훌렁훌렁 갈아입고 여자애들은 후드 집업 안에서 요래요래 티셔츠를 갈아입는 곳. 키친에는 다음 여행자를 위해 파스타 생면을 두고 가는 곳. 비록 졸졸 나오긴 하지만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 독일 뮌헨의 THE TENT다.
뮌헨 중앙역에서 5시간 동안 블라블라카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뚜벅이 여행자가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과 고달픔. 우리는 5시간 동안 보다 편안하고 저렴하게 슬로베니아 블레드에 가기 위해 결코 녹록치 않은 독일의 인터넷 환경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와이파이 때문에 카페에 갔는데 옆에서 독일 젊은 애들이 키스를 한 2시간 동안 하면서 쩝쩝거린다. '쟤네는 왜 모텔에 안갈까?'라고 생각했는데 '아 여기 관광도시라 모텔 겁나 비싸지' 하고 깨달았다. 독일 뮌헨 모텔에도 대실이 있을까? 대실은 3만원일까? 모텔에서 DVD가 빵빵 나오고 짜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을까 알고보면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다가 결국 바로 슬로베니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뮌헨 캠핑장에서 2박 더 하기로 했다. 하루 자면서 이 곳이 얼마나 춥고 시끄러운지 경험하고 판단해야겠지.
'경험하고 판단하기' 여행을 하면서 익숙해진 LIFESTYLE.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여행을 와서야 체화되고 있다. 경험하며, 실수하고, 신중하게 또 그 신중함이 불편하지만 생존을 위해 조금씩 배워나간다. 춥고 고달프지만 이렇게 성장하는 것이리라 애써 위로해본다. 쾰른성당, 아헨성당, 하이델베르크성, 노이슈바인스타인성 독일의 수많은 아름다운 관광지를 가는 것보다 이 곳 텐트촌에서의 경험이 앞으로의 여행과 인생에 더 큰 자양분이기를...
재밌다. 아직까지 여행이 재미있다.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도 않았다. 남들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사진 많이 찍어서 따봉 많이 받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환경에서 선택하고 좌절하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때쯤에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는 그런게 우리 여행의 정체성인것 같다.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이 걷고, 추운 곳에서 자고, 자주 씻지 못하겠지만 호텔방에는 없는 발랄함과 음침함이 이 곳에 있다. 돈이 없기 때문에 경험하는 아름다움. 이런게 낭만이지. 이런게 젊음이지.
아니 졸라 호텔 방에서 자고 싶다. 뜨거운 욕조에 몸 담그고, 시간이 되면 전용차가 호텔로 나를 데리러 오고 가이드가 여행지의 역사 문화 생활을 읊어주는 여행하고 싶다. 돈 펑펑 쓰고 싶다. 도끼 형아 졸라 리스펙한다. 하루에 네 연봉을 벌고 싶다. 젠장 돈이 좋긴 좋지...인생의 진리를 여행와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