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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준 Feb 04. 2022

블렌딩의 이유

<어나더 라운드>

키르케고어에 따르면, 인간은 정신과 육체의 종합이다. 동시에 자유와 필연의 종합, 영원과 시간의 종합, 무한과 유한의 종합이다.

     

그리고  글은 도취와 숙취의 종합이다. 처음엔 흥을 돋울 정도로만 마시고자 했다. 그러나 금세  캔을 비운  나는 제목 <어나더 라운드>처럼 “  !” 외쳤다. 약간의 맥주를 마시고자 했던 계획은 적절한 양의 맥주를 먹자는 걸로 수정되었고, 적당한 양만 마시자는 예정은 이럴 거면 무엇하러 술을 마시냐는 울분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캔의 맥주 끝에 찻장에 있던 위스키까지 동원되었다.     


간밤엔 영화를 보고 술은 마시며 해방감을 느꼈다. 일상의 부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잡념에 시달리는 중생에겐 죽비가 들이닥친다. 어젠 즐거웠지, 하고 낄낄댄것도 찰나였다. 죽비처럼 두통이 들이닥쳤다. 어제 느낀 개운함은 망상이란 걸까. 머리를 깨버릴 듯한 어지러움말했다. 너는 결코 생활의 질곡에서 자유로울  없다, 머리가 달린  너의 디폴트는 고통이다, 빙글빙글. 나도 어지럽고 세상도 어지럽다. 방구석엔 맥주 캔과 위스키 병이 널브러져 있다, 어지럽게.  

   

돌이켜보면 20 때에는 다들  자체는 맛이 없지만 술자리가 재밌어 음주를 즐긴다고 했던  같은데, 30 이후로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취향의 사람 만나서일까. 다들 나와 유사한 것만 같다.  술을 먹냐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답하겠지.     


맛있어서.     


다른 맛있는 것도 많잖아요, 그런데 왜 술만 그렇게 매일 마시나요?     


술 자체도 맛있지만, 맛있는 술은 음식도 더 맛있게 해 주지.     


먹는 낙으로 사나요? 프로이트는 생후 21개월까지가 구강기라 했어요. 입으로만 즐거움을 느끼는 건 만 두 살도 안 된 아기라는 거죠. 그런데 당신은 360개월, 480개월을 살았잖아요.     


(눈물을 흘리며) 흑흑. 사실! 즐거운 게 없어서 말이지요….     


술이 문제라면, 철학자 파스칼 옳았다. 그는 모든 문제가 고요히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고 했는데, 중년이 술을 마시는  혼자 있는  견딜  없기 때문이다. 2014, 버지니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연구자들은 실험 참여자에게 가만히 앉아있거나 버튼을 눌러 전기충격을 경험(?) 것을 권했는데, 남성의 70%가량, 여성의 25% 남짓이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고통보다 참기 어려운 것이 바로 권태다.     



마르틴(매즈 미켈슨)에겐 전기충격 버튼이 없다. 게다가 그의 조국은 평화로이 너도밤나무가 자라는 덴마크. 여기엔 전기충격을 대체할 고통도 많지 않다. ( 아버지와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에 의하면, 풍요로운 인간은 불행하다. 행복한  부유한 서울/유럽 청년이 아니라 빈곤한 가평/러시아 청년이다. 행복은 성취 이후가 아니라 추구하는 과정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애써 불행을 초대해야 하는가. 완성된 행복을 깨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마르틴은 시름시름 앓는다. 그의 병명은 권태이고 증상은 무기력이다.  해도 재미없고, 어디서든 피로하고,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낼  없는 상태다.

     

한국과 달리 덴마크에선 아직까지 좀비가 장르 영화 마니아만의 전유물인가 보다. 사람들은 살아있으되 죽어있는 마르틴을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는 역사 교사 마르틴을 탄핵하려 하고, 아들은 좀비 아버지를 본체만체한다. 좀비를 되살리는  주술사이고 자신은 간호사라는 듯이, 간호사 아내는 남편보다는 환자와 함께 하는  생활을 바친다. 느릿느릿 홀로  좀비가 출근한다. 그리고 퇴근한다. 잠을 잔다. 깨어난다. 같은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같은 과정을 겪는다.

    

친구이자 동료 교사인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 생일에 중년 좀비  술을 마신다. 이때 니콜라이가  철학자의 가설을 소개한다. 모든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부족한 상태로 태어나는데 이러한 결핍이 채워지면 사람은 창의적이고 용감해진다는 . 와인과 보드카로 0.05% 결여를 메꾼 친구들은 용감하고도 신나는 밤을 보낸다.

    

좀비에게도 간은 있는지 다음날, 알코올이 분해된다. 다시금 멍한 상태로 돌아온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만 같다. 늘 했던 대로 출근한다. 그러다 권태에 숨 막힌 마르틴은 어제 들은 가설을 실행한다. 철학자가 옳았다! 좀비는 쑥과 마늘 대신 알코올을 먹고 인간이 되었고, 좀비 선생이 아니라 인간 선생을 만난 학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집중한다.

    

나머지 세 친구도 0.05% 시험에 동참한다. 오래간만에 신선함을 느낀 네 친구는 점점 연구의 난이도를 높인다. 즉, 기분 좋은 정도에서 알딸딸한 정도로, 알딸딸한 정도에서 필름이 나갈 정도로 술을 마시기로 한 것. 이쯤 되면 관객은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어나더 라운드>에서 지루함을 느끼진 않을 텐데,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집중력은 발현되지 않지만 동감에서 빚어지는 관심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매즈 미켈슨이 번쩍번쩍 빛을 내어 눈을 떼기가 어렵기도 하고.  

   

희극에 가까운 전반부 뒤에는 비극이라 불릴 법한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중반 이후는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에서 상영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네 친구의 실험은 엉망이 되어간다. 전반과 후반의 상반된 톤을 관통하는 것은 네 인물, 술 그리고 키르케고르이다. 감독은 작품의 시작에도 그의 말을 배치했고, 영화의 후반에도 한 인물의 입을 빌어 키르케고르의 말을 인용한다. 아마 그에게서 희극과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얻으려는 듯하다.

     

글의 도입에 쓴 것처럼, 키르케고르는 인간을 종합으로 본다. 위를 찌르는 커피와 위를 보호하는 우유가 적절히 조합되어야 훌륭한 카페라테가 되듯, 괜찮은 인간은 상반된 요소의 적절한 종합이다. 좋은 인간은 적당한 비율로 어우러진 수동과 능동이요, 잘 블렌딩 된 과거와 미래이다. 키르케고르의 논리에 의하면, 뭔가 잘못되었고 어딘가 망가졌다 느낀다면, 자신이 모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젊음과 년의 차이  하나가 바로 평형감각이다. 청년은 상반된 요소  어느 하나로 투항하지 않는다. 청춘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비틀댄지언정 어느  쪽으로 넘어지진 않는다. 현실의 벽을 느끼면서도 꿈을 놓지 않는다. 위태롭지만  사이에서 버틴다.


반면 중년은 현실만이 전부라 말한다. 여전히 꿈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걸 향해 나아가야  텐데, 이는 매우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 못하는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고쳐 부르고, 가질  없는 것을 깎아내리는 전략은 꼰대의 노하우다. 소위 신포도 현상이다. 그래서 중년은 이상 같은 얼빠진 소리 말고, 주어진  열심히 하라 소리친다.


그는 어느새 과거와 미래의 종합이 아니라, 과거와  다른 과거의 , 과거  자체가 되었다. 종합의  축이 사라졌으니 뭔가  것만 같다. 그래서 꼰대는 공허하다. 허무를 달래려는 꼰대의 주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숱한 실패에도 여전히 감춰진 성공이 있다고 믿는 것, 너절한 일상에도 빛나는 실존이 스며있다고 신뢰하는 것, 꽉 짜인 생활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고 신앙하는 것. 이러한 종합의 태도가 권태와 무기력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처방일 것이다.


그리고 없는 걸 보게 하는 건 술이 최고다. 술을 마시고 거울을 보면 전에 보지 못한 미녀, 미남이 거울에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예전에는 미남이었다. 여자도 많이 만났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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