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안 맞지만 제일 잘 맞는 사람

아이비리그로 갑니다

by 솜대리



남편은 굉장히 독립적인 데다 이성적인 사람이고, 나는 그렇지 않다. 몇 번 쓴 적 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이런 차이 때문에 엄청 부딪혔다.


남편은 애가 아플 때에도 밥을 안 먹으면 다음 끼니까지 아무것도 안 주겠다고 했고, 아토피 때문에 애가 긁으면 긁지 말라고 혼을 냈고 때로는 화를 냈다. 반면 나는 남편의 표현으로는 '자발적 노예'인데, 어떤 경우에도 애한테 화가 나는 법이 없었고, 위의 상황에서는 아이가 안타까워서 절절맸다.


적극적으로 뽀뽀를 갈망하는 내 입술만 봐도 내가 얼마나 딸내미한테 매달리는지 알 수 있다 ㅋㅋ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 잠을 못 자고 어린이집도 잘 못 가니 건강과 직장 생활이 거의 파국으로 치달았는데, 독립적인 남편은 우리 둘도 툭하면 울고 아프고 한 상황에서도 부모님께 도와달라고 말을 못 꺼냈다. (나중엔 둘 중 하나의 휴직을 고민했다.)


아이가 있고,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서로의 삶과 선택을 존중할 수 없었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생활을 이어가며, 서로가 서로 때문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 컨디션이 나아지면서 끝이 없던 싸움도 그쳤지만, 아직까진 많이 지쳐 있는 상태다.


딸내미가 찍어준 사진. 딸내미랑 있을 땐 쇼윈도 부부다 ㅋㅋ


하지만, 남편 때문에 더 힘든 게 아니라 남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옛날 직급체계로 치면 차장을 달아야 하는 연차에 뒤늦게 석사를 하러 간다.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서 가지만, 전공의 특성상 ROI (투자 대비 수익)는 기대하기 어렵다. 유학을 하더라도 아이와 떨어지긴 싫었고,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조금 고민을 하더니 두 번째 육아 휴직을 따라와서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어쩌다보니, 갑니다.


남편이 커리어를 중단하고 아내를 따라 외국에 가는 건 아직까지 드문 일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결코 나 때문에 가게 되었다거나, 내가 어떻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독립적이고 이성적이고 남의 말은 절대 안 듣는 ㅎㅎ 남편에게 이 결정은 자신을 포함한 '우리'가 내린 것이기 때문에 나한테 화살을 돌릴 일이 없는 것이었다. (간혹 내게 걱정 섞인 얘기는 좀 한다 ㅎㅎ)


남편은 이 결정을 두고 '안정적으로 지내던 우리 가족을 송두리 째 뽑아 맨해튼으로 던져버렸다'라고 했다. 이런 일을 만드는 아내에게, 남편 같은 파트너도 없을 것 같다.

생전 처음 AR (사파리) 체험 하면서 겁먹은 딸내미. 남편과 나도 이 같은 심정. 우리 둘 다 서양에 살아보는게 처음이다.


이 글도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사이에 일부 썼고, 남편에게 남편 얘기를 브런치에 쓰겠다고 하니 뭐라고 하거나 걱정하기보단 그냥 무슨 글을 쓸까 그저 궁금해할 뿐이었다. 이 정도면, 앞의 싸움쯤은 그냥 애교로 삼아야 하는 것 같다.


카페에서 글쓰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남편과 딸내미. 남편 고생한다.





* 유학의 시작이 된 토플 공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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