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휴직 일기

by 솜대리



남편은 육아 휴직 기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육아휴직 일기를 남겼다. 그 일기 덕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남편의 육아 휴직 종료를 하루 앞둔 오늘, 벌써 남편의 육아 휴직 일기가 그리워진다.


아래는 며칠 전 일기


육아휴직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의 육아 패닉은 끝나지 않는다. 딸내미가 담이 걸려서 이틀 간 침대 생활을 하고 우리는 번갈아가며 마사지와 수발을 ㅎㅎ


8월 31일에서 9월 1일로 넘어가는 깊은 밤.



딸내미가 깼다. 전날 밤 내가 수영장 간 사이 9시 20분쯤에 잠들었다고 해서 설빙까지 테카웃해서 먹었는데, 너무 일찍 자서 그런지 12시 30분에 딸내미가 깬 것이다.



나랑 아내는 아주 오래간만에 지옥으로 소환되었다. 딸내미는 평소에는 엄마 아빠 말을 잘 따르고 투정도 거의 부리지 않는다. 그런데 새벽에 깨서 비몽사몽중에는 엄청나게 울고 투정도 많이 부린다.



깊은 밤에 깬 딸내미는 투정 대마왕이 되어 있었다. 다리가 아프다, 다리를 주물러 달라, 그런데 그게 반드시 '아빠가' '두 팔로' '각각의 다리를' '일어나 앉아서' 주물러 달라고 한다. 단 하나의 주문이라도 틀리면 아랫집 윗집 사람들 다 깨라고 운다.



그렇게 다리 주물러 달라고 했다가, 쪽쪽 빨아먹는 우유 마시고 싶다고 했다가, 선풍기를 세게 틀어 달라고 했다가, 책 읽어 달라고 했다가, 침대에서 자겠다고 했다가, 건넛방에 가서 자겠다고 했다가, 아무튼 간에 온갖 진상은 다 부렸다.



순도 100퍼센트의 진상이 아니긴 했다. 딸내미의 다리 피부는 만성 피부염이 되어서 이제 더마톱을 하루에 두 번 바르면 괜찮지만 하루에 한 번 바르면 바로 볼록볼록 한 발진이 올라온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하루에 한 번 바른 지 3일 정도 되었는데 그 부위가 빨갛게 올라오면서 너무너무 가렵다고 울면서 막 긁는데... 이건 정당한 고통의 표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쌩 진상들이랑 섞여 있으니 나중에는 나도 '아 어쩌라고 그냥 긁어! 긁어!' 하면서 아이를 타박했다.



그렇게 12시 30분에 깨서 다시 잠든 시간이 새벽 2시 45분... 2시간 15분 동안 사투를 벌인 뒤 딸내미는 겨우 잠이 들었고, 아내도 탈진하고 나도 탈진했다.



나는 거의 3시에 잠들었고, 7시에 기상했으니 4시간만 잔 셈이었다. 일어나면서 든 생각은 '오... 딱 4시간 자고 일어났을 때 그 느낌 그대로이군'이었다. ㅋㅋㅋㅋ



딸내미도 어지간히 피곤했을 텐데 웬일로 7시에 나랑 같이 일어나서 (정확하게는 딸내미가 7시에 깨서 나도 같이 깬 거지. 보통 딸내미는 7시 30분이 넘어서 우리가 깨워야 일어남.) 아침부터 거실에서 놀았다. 그리고는 어린이집 갈 때가 되니 피곤해서 안 가겠다고 투정 부렸는데 내가 단호하게 어린이집은 네가 아프지 않은 이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드시 가야 되는 거라고, 힘들면 선생님한테 말하고 구석에 누워 있으라고 그랬다.



그랬더니 딸내미가 곧 수긍하고 어린이집에 갔다. 그렇다. 딸내미는 맑은 정신에서는 말을 정말 잘 듣는다. 새벽에 깼을 때 흑화 하지...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딸내미는 어린이집에서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잘 있었다고 했다. 하원 후에 딸내미에게 '어린이집에서 어땠어?'라고 물어보니 딸내미는 '피곤해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어'라고, 선생님과 정말 반대되는 말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ㅋㅋ



보통 이럴 때 나는 웬만하면 선생님 말을 믿는다. 딸내미는 아직 진실과 거짓에 대한 개념이 완벽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피곤해서 방구석에 처막혀 있었어' 는 '나 엄청 피곤했어' 라는 감정의 표현 방식인 것이다. 피곤했지만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놀았고, 그래서 선생님은 나에게 잘 놀았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고 딸내미는 피곤해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어, 라고 완전히 반대되는 말을 한 것일 게다.



저녁에는 딸내미랑 아내랑 나랑 셋이서 집앞 놀이터에서 놀았는데, 갑자기 예전 제주도 여행에서 숨바꼭질 할 때 딸내미가 규칙 파괴자였던 것이 기억이 나서 이 참에 딸내미에게 규칙을 지키는 법을 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해서 딸내미와 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내가 술래를 했고 딸내미에게 '아빠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 라고 말할때는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다!' 하면서 뒤로 돌아보면 멈춰야 돼' 라고 가르쳐 주고 놀이를 시작했는데



우리 규칙 파괴자님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 까지 가만히 있다가 '다!' 하면서 돌아보니 그 때부터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ㅋㅋㅋㅋㅋ 너무나 해맑게 웃으면서 규칙을 파괴하는게 너무 웃겨가지고 배꼽 빠지게 웃으면서 그러는거 아니라고 다시 하라고, 다시 하라고 계속 말해 줬는데 딸내미는 내가 엄청 웃으니까 그게 좋아가지고 계속 규칙을 파괴하고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배가 땡기도록 웃었다. ㅎㅎㅎ



딸내미는 10시가 조금 넘어서 잠이 들었는데, 10시 30분 언저리가 원래 자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새벽에 안 깨고 잘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딸내미가 조용히, 곤히 잠들어 있으니



너무 행복한 것이었다. 어제는 지옥이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평온할 수가!



아... 행복이 별거냐. 이런게 행복이지... 딸아 오늘은 깨지 말고 푹 자렴... 이라고 속으로 말하고는



나도 곤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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