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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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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ug 12. 2023

출국 대신 수술, 아플 새도 없다

휴직 5~9일 차


코 골절 진단을 받은 건 출국 불과 3일 전이었다. 부정하고싶었지만 CT 사진 속 코뼈는 너무 선명하게 세동강 나 있었다. 으악.


병원을 더 알아보고 말고 할 새도 없어서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서 수술을 잡았다. 출국하기로 했던 그 날 그 시간, 비행기 대신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두둥


급하게 일정을 바꾸려니 수술 때까지 아플 새도 없었다. 비행기표도, 기숙사 입실도, 짐 배송 일정도 모두 바꾸어야 했다. 낮에는 방법을 알아보고 밤에는 현지와 연락을 해야 했다.


비행기, 이코노미에 경유에 편도인데 300만원이라니 ㅠㅠ


수술 전 날 저녁이 되어서야 주요한 변경을 모두 끝냈다. 여러 가지로 손해가 막심했지만, 어쨌건 수술 전에 모두 해내서 후련했다.


그제야 코도 좀 들여다 보고 수술 후기도 찾아봤다. 코의 멍은 노랗게 변해 있었고, 후기에는 아프고 괴롭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바빠서 아픈 줄도 몰랐던 코가 괜히 더 시큰거리는 느낌이었다. 바쁜 덕에 코가 부러졌어도 수술 전까지 잘 지냈나 싶었다. ㅎㅎ



-


지금은 수술이 끝난 지 36시간 정도 지났다. 가장 겁나는 부분은 전신 마취였는데 다행히 잘 깨어났다. ㅎㅎ 수술한 코는 열감도 심하고 아팠지만, 출산도 했는데 이 정도는 버틸만했다.


엉엉


다만, 예상보다 코를 막아둔 게 힘들었다. 지혈도 하고 지지도 하도록 코를 24시간 동안 솜으로 꽉 막아뒀는데, 숨을 못 쉬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솜을 빼면서 보니 코 뼈가 덜 맞춰져서, 쇠막대기를 코에 넣고 들어 올렸는데 그것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맨 정신에 그런 고통을 (부러진 데에 이어서) 또 겪다니. ㅎㅎ


의외로 좋은 점(?)도 있었다. 2박 3일 입원하면서 남편이 보호자로 들어와 있었는데, 남편이 나를 챙겨주는 걸 보면서 예전 남편의 상냥하던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ㅋㅋ 내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고 나서는 같이 TV도 한 편 봤는데, 둘이 가만히 함께 TV 본 게 정말 오랜만이라 좋았다. 미국 가기 전에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물론 친정엄마의 육아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는 아프면 진짜 안된다.)


그리고 딸내미의 편지도 받았다! 갑자기 나한테 편지 쓴다고 했다고 :)


생각해 보면 내가 미국을 늦게 들어가게 된 데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원래 딸내미와 남편은 나보다 한 달쯤 늦게 미국으로 올 예정이었는데, 그 간극이 2주 정도 줄었다. 기숙사에 아무것도 없어서 가자마자 한 여름에 더워서 어쩌나 싶었는데, 8월 말에 들어가니 그 걱정도 덜었다.


밀린 출국 준비도 잔뜩 했다



진심으로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걸 보니, 이제 좀 살만한가 보다. 아 잘 버텼다. 고생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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