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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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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Sep 12. 2023

딸내미가 오니 바로 일상

미국생활 21일 차



결코 일상화될 수 없을 것 같던 여기에서의 삶이 딸내미가 오니 바로 정리됐다.


남편과 육아와 집안일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간간히 다른 육아관에 다투고 그러다가도 다시 딸내미 일로 같이 힘을 합치며 하루를 보내는 일상. 내 일상은 뉴욕이냐 한국이냐 보다 딸내미가 있나 없나로 규정지어지는 것 같다.


오늘은 같이 브라이언 파크를 가려다가 지하철을 내리니 비가 쏟아져서 오큘러스 센터로 급 선회했다. 비 오는 날 뉴욕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곳 중 하나가 오큘러스 센터였다. 내가 본 웹사이트에서는 비 오면 센터 안에서 쇼핑을 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편의점에서 딸내미가 먹고 싶어 하는 오레오만 하나 샀다. ㅎㅎ 딸내미가 오레오를 먹는 동안 잠깐 앉아서 내부의 독특한 디자인을 구경하다가, 오레오를 다 먹은 딸내미가 집에 가자는 걸 설득해서 3분 만에 그라운드 제로를 보고 왔다. 비가 올 줄 모르고 우산도 1개만 가져와서 남편이 딸내미를 안고 후다닥 보고 왔다. 이러니 딸내미와는 어딜 가도 그 장소보다 딸내미와 했던 일이 더 많이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ㅎㅎ


다음날이 9월 11일이라 그런지 거대한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오는 길에는 또 갑자기 달걀 염색하자는 얘기가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식료품점에 들렀다. 흰색 달걀은 집 근처에서 사도 됐지만, 육아하는 엄마는 본인의 사욕을 채울 작은 기회도 놓치면 안 된다. ㅎㅎ


우리가 간 식료품점은 'Zabar's'라고 뉴욕에 굉장히 유명한 식료품점이다. 염장 생선, 굉장한 치즈와 저장제품 컬렉션, 베이커리로 유명하다. 전에 와서 같이 있는 카페는 이용해 본 적이 있지만, 식료품 쇼핑도 해보고 싶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한번 쇼핑을 해보니, 무엇보다도 친절함이 매력적이었다. 완성 식품 코너에서 치킨 푸타네스카 (닭고기 순살에 토마토소스를 얹은 요리)를 사는데, 닭고기만 먼저 덜어내서 무게를 재고 소스는 추가로 얹어줬다. 딸내미가 마카롱을 사는데 디저트 코너에 사람이 없자, 지나가는 직원이 사람을 불러다 주었다. 커피를 사는데, 커피 봉지에 원두를 담을 때 원두가 몇 알 떨어지자 직원이 더 많은 양을 원두를 추가로 넣어주었다. 서비스 정신이나 친절함은 미국 와서 좀처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서로 다른 직원들이 모두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굉장히 감명 깊었다.


딸내미 뭐하니 ㅋㅋ


음식도 괜찮았다. 치킨 푸타네스카는 반찬으로 먹는다고 4쪽만 샀는데 한국 돈으로 16000원 정도 했다. 여기 물가 생각하면 괜찮았다. 맛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고 (하지만 푸타네스카 본연의 올리브 케이퍼 등으로 인한 자극적인 맛은 있으면서) 괜찮았다. 커피 원두는 디카페인인데도 맛이 괜찮았고, 따로 구매한 식사 빵도 괜찮았다. (다만 유명하다고 해서 산 디저트들은 달아도 너무 달아서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 디저트 입맛이 다 그런 것 같다.) 케이퍼도 구매하려고 보니 다양한 옵션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유명한 커피 브레드. 커피가 든 건 아니고 커피랑 같이 먹는 빵이라는 뜻인 것 같다. 건포도가 딸기잼과 함께 들어있다



앞으로 오프라인 쇼핑을 할 때 자주 들를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로컬 식료품점이 생기니 진짜 로컬이 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돌아다니는 동안 남편과 내내 티격태격했다. 참고로 남편의 오늘 일기 제목은 '애새끼 데리고 다니기 힘드네' 다. 참내 ㅋㅋ



내가 보기엔 아이가 본인 또래 수준에서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남편은 아이에게 지하철에서는 똑바로 가만히 앉아있어라, 마트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말고 잘 걸어 다녀라, 목소리 낮춰라, 자꾸 말 안 듣고 입에 손을 넣으면 앞으로는 손등을 찰싹 때리겠다 등등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다. 참다가 몇 마디를 하게 되었고 결국 내내 티격 대며 다녔다.


그래놓고는 아이가 잠든 후에는 둘이 합심해서 내일 아이 첫 등원 준비를 하고, Zabar's에서 사 온 디저트를 나눠 먹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안 드는 거고, 안 맞는 건 안 맞는 거고, 챙길 건 챙겨야 한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이건 Zabar’s의 또 다른 인기 디저트. 달았다. 그나저나 우린 아직도 바닥에서 밥을 먹는다. 이케아는 구매가 너무 어렵다 ㅠㅠ


이렇게 아이가 오자마자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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