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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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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Sep 19. 2023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미국생활 29일차



딸내미가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손을 내밀며, 'Hold my hands~'라고 했다. 가르쳐 준 적이 없는 말인데 학교에서 배운 모양이었다. 내가 깜짝 놀라자 남편이 '하원할 때는 Umbrella라고도 하던데?'라고 했다.


오늘 등원도 잘했다. 월요일인 데다 어제 늦게 잤고 아침에 비까지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조금 찡얼거리고 말았다. 여전히 친구들이 무섭다고 가기 싫다고는 하지만, 많이 적응한 것 같다.


잘 지내는 딸내미. 볼살이 터질 것 같다 ㅎㅎ


이제 슬슬 내 앞가림을 해야 할 때다. 주말에 완전 아이와 붙어 다니느라 이번주 수업 준비 (사전 읽기 과제)를 거의 못했다. 그리고 정신은 얼마나 없는지, 오늘 두 번째 수업은 Zoom으로 진행돼서 첫 번째 수업을 마치자마자 도서관에 들어갔는데 이어폰이 없었다.


도서관 로비에서 어떻게 해보려다가 도저히 안돼서 마침 근처에 있던 남편을 불렀다. 내 핸드폰은 월간 제한에 걸려 핫스팟도 안돼서 남편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연결하고 수업을 들으며 집까지 걸어왔다. 집에는 인터넷이 안돼서 남편 폰을 창가에 두고 딱 붙어서 수업을 듣는데 (아 열악하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이 발견됐다. 얼마나 민망하던지.


요즘 너무 정신이 없다. 수업은 준비할 시간도 없고, 살 건 여전히 많고(집에 뚫어뻥만 있었어도 어제 그 역류 사태는 없었을 텐데!), 무신용자라 신용카드는 툭하면 정지되고, 환율도 살피면서 중간중간 환전도 해야 하고, 늦었지만 나 빼고 동기들 다가는 이번주에 열리고 있는 NYC Climate Week 행사도 한두 개는 가봐야 하나 싶고, 최소한의 네트워킹은 해야 할 것 같다. 운동은 해야 할 것 같지만 도무지 틈이 안 난다. 항상 쉴 새 없이 뭘 생각하거나 하고 있는데, 정신없이 여러 가지를 동시에 챙기려니 덤벙거리게 된다. 회사를 다니나 안 다니나 똑같다.


 이 와중에도 아이가 잘 때까지는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겠다고 새롭게 결심했다. 원래는 할 게 워낙 많아 저녁을 먹으면 다시 도서관을 갈까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눈에 걸린다. 오늘 내가 Zoom 수업 때문에 집에 있자, 아이가 하원하고 와서 '엄마 왜 오늘은 학교에 안 가고 왔어?' 라며 반겼다. 그리고 저녁에는 밥을 챙겨 먹이고 다시 나가려 하자 아이가 서운한 얼굴을 했다. 생각해 보니 저녁 시간이 아니면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아침에야 서로 준비하느라 바쁘고 하원 후에도 나는 내내 학교에 있으니.


그래도 여기선 아이가 8시 반이면 잠든다. 잠들면 정리할 새도 없이 후다닥 공부모드로


시간이 지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학교 생활이 조금 익숙해지고, 생활이 자리가 잡히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회사 다니면서 육아와 회사일을 저글링 했던 것처럼. 그때까지는 나의 정신없음을 지켜봐 줘야겠다.


드디어 이 단계에 접어들어 기쁘다. 아이도, 주변도 조금씩 정리가 되어 나를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거니까 ㅎㅎ




+) 일기도 가능한 매일 쓰겠다고 이러고 있다. 졸려서 더 이상 영어가 눈에 안 들어올 때, 생각의 흐름대로 후루룩. 엄마가 너는 평생 바쁘게 생겼다고 했는데,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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