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93일 차
남편은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그래도 나는 남편이 미국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여러 가지를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도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게 좋고, 아무리 집에 있는 걸 좋아해도 가끔은 사람들과의 교류나 외부 자극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혹시 우리가 미국에서 살게 될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도 경험을 해보는 게 결정이나 나중의 적응을 위해 좋을 것 같고. 그간 주말에 열심히 같이 다니는 것 말고도, 내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것도 해봤고, 달리기를 좋아하니 센트럴 파크 러닝 클럽도 조인하도록 했다. 뭐 남편은 기분이 내키면 따라는 주지만 크게 임팩트는 없다. 러닝클럽도 달리기만 하고 오고. ㅎㅎ
뭐 애초에 크게 기대는 안 해서 큰 실망도 없다. 하지만 노력은 계속한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나의 시도 2개가 겹쳤다. 6시에 외국인 학생 가족 포틀럭 파티에 같이 참여했다가, 내가 애를 보고 8시에 남편을 카네기 홀에 보냈다 ㅋㅋㅋ 사실 하루에 두 가지나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외국인 학생들의 배우자 모임이 매주 있다는데 어째서 몰랐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관련 부서에 문의를 했더니, 이번주는 포틀럭이 있다고 했다. 요즘 학기 말이라서 뭔가 따로 준비할 시간은 없고 가장 쉬운 음료 준비를 맡았다. 도서관에 있다가 시간 맞춰서 집에 가서 바리바리 가족들을 챙겨서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탠딩 파티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딸내미를 놓칠까 봐 신경 쓰기 바빴다. 거기다가 초등학생쯤 되는 일본인 남자애 하나가 왠지 모르게 자꾸 딸내미랑 나를 때려서 식겁했다. 두세 번째에는 일본어로 직접 뭐라고 하려다가 그 집 엄마가 하도 미안해해서 참았다. 남편은 자유롭게 얘기하도록 하고 혼자 애를 쫓아다니는데, 새삼 이래서 남편이 애 데리고 놀이터 외 장소 가는 걸 싫어하는 거겠지 싶었다. ㅎㅎ (독박을 하더라도 난 이런데 나오는게 좋지만 ㅎㅎ 아이도 재밌었단다.)
어른들끼리 왔으면 재밌었을 것 같다. 자기 나라 음식을 해온 사람들도 많았다. 초밥롤도 있고, 인도네시아 폰당도 있고, 카레도 있고, 스웨덴 술도 있고, 김치전도 있었다. 음식을 슬쩍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신이 났다. 무엇보다도 김치전이 반가워서 두 점이나 집어 먹었다.
사람들 사귀거나 수다 떨기에도 좋았다. 네트워킹 파티를 가면 보통 대화 전에 저 사람이랑 대화할만할까 간 보기도 있고 잠깐 얘기하다 명함만 받고 바로 뜨는 경우도 많은데, 여기는 다들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고 순수히 사람 사귀려 온 장소다 보니 다들 적극적으로 '대화'를 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마구 말을 걸어와서 남편도 정신없이 대화를 했다고 했다. 다음 주 티타임은 한 번 가보겠단다.
1시간 반쯤 있다가 남편은 카네기 홀로 먼저 향하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재웠다. 다음날 물어보니 클래식 감상법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어떤 곡이 되게 신기했다면서 들어보라고 틀어줬다. 뿌듯했다. 남편한테 이것저것 괜히 권해본다고 나도 (사서) 고생이 많고, 적당히 따라주느라 남편도 고생이 많다. 전혀 다른 두 사람도 같이 살면서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