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뉴욕 일기

기후 전공자와 시인, 천문학자의 공통점

미국생활 101일 차

by 솜대리



어제는 한 학기 동안 나의 골치를 썩였던 지구과학 수업이 종강을 했다. 한참을 넷제로를 달성하는 게 즉각적인 온도 상승 억제 효과를 가지고 오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마지막에는 'A beautiful world, ours to know and to save' (우리가 알고 지켜야 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슬라이드가 떴다. 교수님이 한 학기 동안 잘 해준 학생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얘기하며 살짝 울컥해 했다.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한국에서는 한 번도 선생님한테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을 여기 와서 두 번째 듣는다. 월요일에 기후 법과 정책 수업이 종강할 때도 교수님이 그 얘기를 했다. 잘 따라와 줘서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나는 마치 자랑스러운 아이를 둔 엄마의 기분이라고. 그리고 이 교수님도 살짝 울컥했다. 이상했다.


이런 이상한 기분은 학기 초에도 느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사회자가 '자신의 기후 스토리' (기후를 전공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도록 했다. 공식 행사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동기들과 얘기할 때도 그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서로 나눴다. 학부 때는 전혀 없었던 일이다.


생각하다 보니, 시인 박준의 인터뷰와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의 에세이가 생각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시인은 그 업계는 아무리 성공해 봤자 얼마 못 벌어서 서로 시기 질투도 별로 없다며 동료들과의 연대감을 얘기했었고(책 ‘문학하는 마음’), 심채경 박사도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돈도 되지 않는 천문학을 선택한 동료들과의 연대감을 얘기했었다.(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단순히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 얘기하기 편하거나 한 게 아니고, 이런 길을 선택한 우리에 대한 연대가. 기후 쪽에도 조금은 그런 마인드가 있는 것 같다.


심채경 박사의 책은 이 것. 따뜻한 책이다.


지금이야 기후가 핫하다고 하지만, 지금 이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을 거다.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만큼 세상의 관심도 없고 딱히 큰돈도 안 되는 학문. 그래서 그분들은 시인과 천문학자들… 까지는 못 해도 어느 정도 비슷한, 같은 전공자들에 대한 연대감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졸업생의 상당수는 NGO를 간다. 이 비싼 학비를 내고 나서.)


박준 시인의 인터뷰는 이 책. 문학 관련해 일하는 다양한 사람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다른 업계를 엿보기 좋다 ㅎㅎ


그래서 수업을 마칠 때 "자랑스럽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 자랑스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랑스럽다',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상당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ㅎㅎ 학기 말 감성인가 보다.


수업 레코딩 돌려보다 발견한 나. (가운데 긴 검은 머리의 고뇌하는 여자) 카메라가 교수님이 아니라 교실 쪽으로 잘 못 세팅된 것 같은데 덕분에 추억 사진은 몇개 건졌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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