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117일 차
불태웠다. 장장 4시간에 걸친 기후 법과 정책 시험이 끝났다. 교수님이 4시간이 걸릴 리는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영어 작문만 해도 한 세월이 걸리는 나는 시간이 빠듯했다.
이 과목은 가장 힘들었던 과목 중에 하나였는데 마지막까지 힘들었다. 사람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어서, 나는 소화가 어려운 강의일수록 시간당 집중력이 더 많이 소모돼서 더 빨리 지친다. 그렇게 지쳐 있으면 강의 내용은 머릿속으로 하나도 안 들어오고 흘러가버린다. 일반 과목도 그래서 수업 중간중간에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목은 더 많은 집중력을 요하는 바람에 더 많이 놓쳤다 ㅋㅋ
그래서 남들 시험 공부하는 동안 수업 녹화본 돌려보면서 공부했다. 그나마 교수님이 녹화본을 제공해서 다행이다. 교수님은 Environmental Justice (기후 정의) 전문가라 나 같은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가 많아서 ㅎㅎ 그래도 드랍 안하고 버틸 수 있었다.
이번 주는 수업이 없어서 남편과 매일 도서관으로 같이 출근을 했는데, 이 공부를 할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는 나 때문에 옆에 있는 남편도 덩달아 고생했다. 간식도 엄청 먹었다. 당 떨어진다는 핑계로 시험 기간 한정으로 제공되는 과자도 집어 먹고, 평소 같으면 안 사 먹는 맛없고 비싸고 바짝 마른 빵도 매점에서 사 먹고, 딸내미 간식도 가져와서 먹고. ㅎㅎ 신기한 게 그래도 단 걸 먹으면 머리가 바짝 깨는 게 느껴진다.
엊그제 기후적응 과목 페이퍼를 제출하고부터 머리가 안 돌아가서 고생했는데, 평소 자제하던 카페인과 과자들을 먹으며 억지로 굴렸더니 오늘은 뇌의 과부하가 느껴졌다. 어제는 잠도 충분히 잤는데 오전에 공부하고 점심때 들어왔더니 너무 힘들어서, 15분 누워있는데 거의 정신을 잃었다. 4시쯤 시험 보기 전에도 뇌가 너무 지친 것 같아서 일부러 들어와 누웠더니 15분쯤 정신을 잃었고. 뇌도 고생이 많다.
그래도 다음 주 화요일 딱 한 과목 남았다. 다른 거 하느라 하나도 공부를 못했는데 얼른 하고 끝내야지!
--
지난 수요일에 딸내미한테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라고 했는데 아이가 웬 일로 "혼자 놀았어"라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렇게 지나갔는데, 한참 있다가 아이가 반 애 한 명이 밀어서 머리를 벽에 부딪혔다고 했다. "하지 말라고 했어?" 물었더니, "처음에는 No라고 했는데 3-4번 더하니 힘이 없어서 가만있었어" 란다. 3-4번을 더 했다고??? "선생님은?" 물으니 주변에 없었단다. 때리는 건 정말 나쁜 짓이고, 절대 가만있지 말고 너도 점점 더 크게 소리 지르라고 알려줬다. 우연히 들었는데 다른 아이도 집에서 맨날 그 아이가 불편하다고 엄마한테 하소연한다고 했다. 그런 애한테 잘 못 걸리면 안 되는데. 말도 안 통하니 더 문제다.
다음 날 몇 번 더 당부를 하고 학교를 보냈다. 하원하자마자 어땠냐고 물으니, 그 애가 자기가 가지고 놀고 있는 걸 뺏으려고 하길래 "Mine!(내 거야!)"라고 했단다. 그래도 계속 뺏으려고 해서 더 크게 얘기했더니 선생님이 와서 "치웠다"라고 한다. 잘했다고 칭찬하고 다음에도 걔가 괴롭히면 크게 소리치라고 알려줬다. 오늘도 당부를 하고 보냈는데, 다행히 오늘은 아무 나쁜 일도 없었고 좋은 일만 많았는데 뭔지는 비밀이란다.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생각이 났다. 남자아이들이 나를 좀 괴롭혔는데, 내가 가만히 있었더니 점점 강도가 심해졌다. 엄마한테 얘기를 했고 엄마가 듣더니 선생님한테 바로 편지를 써줬는데 선생님은 아무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또 괴롭히면 실내화를 벗어서 등짝을 때려!"라고 얘기했다. 다음에 괴롭힘을 당했을 때는 차마 실내화로는 못 때렸지만 손으로 등짝을 내리쳤다. 그 한 번의 동작으로 나는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딸내미는 잘 이겨내리라 믿고 나도 담임 선생님께도 슬쩍 얘기를 해놓을 셈이지만, 괜히 애잔하다. 빨리 시험을 끝내고 딸내미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