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뉴욕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솜대리 Jan 08. 2024

매콤함과 얼큰함을 추구한 자의 최후

미국생활 141일 차



우리 부부는 매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김치도 찌개도 탕도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하지만 뉴욕에 오니 그런 음식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졌다 ㅠㅠ 김치는 비싸서 간혹 가다 한번씩 먹고, 자주 먹던 김치찌개나 부대찌개도 먹기 힘들다. 그래서 대신 훠궈를 종종 먹었다. 훠궈야 훠궈 국물 재료만 사서 물에 풀고 각종 채소나 고기를 담그면 되니까.


토요일 저녁에도 훠궈를 먹었다. 아무리 쉽다고 해도 재료도 여러 가지 구비해야 하고 한 번 하면 규모가 커지니 손님이 와야 훠궈를 했는데, 토요일은 특별히 우리만을 위한 훠궈였다. 마침 사놓은 칼국수 면도 있어서 훠궈 마지막에는 칼국수도 먹었다. 둥둥 떠다니던 기름들이 칼국수면의 전분에 녹아 모두 면에 스며들었다. 매웠지만 맛있었다. 마라 칼국수까지 해 먹었다! 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다 ㅠㅠ 나는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남편은 자면서 고통받았다. 다음 날은 둘 다 배를 움켜쥐고 하루 종일 괴로워했다 ㅠㅠ 재료도 모두 산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상한 음식은 없었을 텐데 너무 매웠나 보다.


평소에는 훠궈를 먹어도 보통 어른 넷이 먹으니 그 위에 떠 다니는 매운 기름도 넷이 나눠 먹었을 거고 남아 버리는 기름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둘이서 먹은 데다 칼국수 면에 남은 기름까지 쫙 흡수해서 먹었으니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었으면 약국이라도 가봤을 것 같은데, 여기는 아파트 단지 내 약국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좀 걸어 나가야 하고 마침 눈도 펑펑 오고 기껏 약국에 가도 한국에서 만큼 편하게 소통할 것도 아니라 버텼다. 단순히 매워서 그런 게 맞는지 나는 열이 37.5도, 남편은 38도까지 올랐다. 남편은 몸살 기운도 있었다.


둘 다 좀비였고 번갈아 가며 낮잠을 자니 아이는 지겨웠을 텐데 잘 버텨줬다. 전날 엄마가 보내 준 스티커 북들을 죄다 꺼내놓고 놀았고, 코코아를 먹겠다더니 눈을 바라보며 먹겠다며 창문 앞에 앉았다. 코 앞에 다른 건물 벽이 있어서 눈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게 앉아서 조금씩 내리는 눈을 보고 클래식이 나오고 있던 스피커를 옆에 가져다 두고는 행복해했다. ㅎㅎ 아이가 행복해줘서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눈이 펑펑 내려서 저 좁은 틈사이로 조금은 눈이 보였다. 낭만을 아는 귀요미 ㅋㅋ


저녁이 되니 그래도 정신은 조금 차렸다. 속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원래 외삼촌과 코리아 타운에서 순두부를 먹기로 했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어떻게 갈 수는 있었다. 순한 맛을 먹긴 했지만 사실 조금 자극이 되긴 했다. 그래도 보람이 있었던 게 남편은 열과 몸살기는 있지만 속은 다 나았다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웠고, 딸내미도 아이용으로 퍼 준 순두부를 혼자서 다 먹어치웠다. 어차피 딱 하루만 참으면 여기서 매콤한 음식 먹을 수 있었는데 못 참고 훠궈를 먹어서 만 하루를 넘게 고통받았다.


한국 북창동 순두부보다 양이 좀 많았다. 맛은 비슷


외국에서 컨디션이 안 좋으니 아찔했다. 크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병원이나 약국 가기도 한국보다 훨씬 불편하고 한국이었으면 우리 둘 다 아프면 가까이 사는 엄마한테 SOS를 쳤을 텐데 그런 것도 없고. 여기 있을 땐 특히 건강관리 잘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날 것, 매운 것, 상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 특히 조심해야지. (훠궈는... 다시는 못 먹을 듯. 훠궈라고 타자 치는 것만 해도 속이 안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맘클럽을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