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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an 28. 2024

확실한 이방인이 되는 할렘, 다운 사이클

미국생활 160일 차




오늘 아침도 뻗어있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 피곤한데, 어젯밤에는 잠도 설쳤더니 못 일어났다. 며칠 째 아이 등굣길에 동행을 못했더니 아이 친구 엄마가 괜찮냐며 문자도 보내왔다. ㅎㅎ


진짜 감동 ㅎㅎ


9시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가 허리가 아파 일어나서는 뭉그적 거렸다. 기운은 없는데 집에 있기는 또 갑갑했다. 옷도 살 겸 할렘으로 향했다.


둘째라 그런지 배가 금세 나온다. 이제 9주 차인데 벌써 배가 조금 나왔다. 바지들이 불편한데, 그나마 잘 못 사서 큰 바지가 있어서 그걸 하나 입고 다니고 있었다. 미국에는 Marshalls라고 의류 할인 매장 체인이 있는데 할렘이 가장 가까운 매장이라 그리로 향했다. 간 김에 궁금했던 치킨집도 가보기로 했다.


둘 다 125번가 x 말콤, 할렘의 중심지에 있다.


할렘은 세 번째인데 갈 때마다 좀 불편했다. 맨해튼은 워낙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으니, 우리가 어딜 가도 전혀 튀질 않는다. 오히려 전에 얘기했듯 서로 신경 쓰지 않는 자유가 좋은데, 할렘에서는 항상 우리만 아시안이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갈 때마다 사람들이 "쟤네는 여기 왜 온 걸까" 힐끔거리는 느낌이다. 반대로 흑인들은 여기서 안정감을 느끼려나 싶다.


백인들도 여기서는 꽤 튄다. 맨해튼에서도 그런 걸 보면, 현실적으로 아직까지 인종 간에는 잘 못 섞이는 것 같다. 다시금 아이들이 메이저로 살게 하기 위해 자메이카로 이주하겠다는 딸내미 친구 엄마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메이카 출신 흑인과 결혼한 그 엄마(백인이다)의 사랑은, 타 인종 간의 결혼은 참 큰 일이구나 싶고.


옷은 딱히 사질 못했다. 길이감이 긴 상의를 사고 싶었는데, 한국에선 흔한 스타일이지만 여기선 잘 안 보인다. 할렘에 물건이 더 없는 느낌이기도 하다.


식당은 나쁘지 않았다. 유명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라 동기들도 많이들 알더니만, 평일 점심임에도 식당이 가득 찼다. 샐러드에 갈릭 매쉬/ 콜라드 사이드에 잔뜩 시키고 치킨도 두 종류를 시켰다.


분위기도 약간 힙하다


드디어 나온 치킨에서는.... 한국 맛이 강하게 났다 ㅋㅋ 매콤한 치킨은 어째 고추장 맛이 나는 듯했고, 짭짤한 치킨은 딱 간장 치킨이었다. 어찌나 한국 치킨과 싱크로율이 강한지, 외국 치킨인데 한국 느낌이 나는 게 아니라 그냥 한국 치킨에 살짝 향신료를 추가한 느낌이었다. (카레 가루 들어간 프랜차이즈 치킨 정도의 느낌 ㅎㅎ)


닭이 엄청 큰 거 빼고는 비주얼도 간장/ 고추장 양념 치킨 ㅎㅎ


우리나라의 치킨과 흑인들의 소울푸드 치킨 둘 다 최상을 추구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 가서 튀긴 닭은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ㅋㅋ


옥수수를 거칠게 갈아 만든 콘브레드, 식감도 좋고 구수하니 맛있었다!


돌아와서는 뻗었다. 이번주 내내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피곤은 했지만 입덧은 조금씩 나아졌었다. 그래도 굶지는 않고 사람처럼 지낼 수 있었는데, 다시 뭔가 안 좋아지는 사이클 인가 보다. 속도 안 좋고 어지럽고 힘들다. 나가서 맛있는 걸 먹고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나갔던 것도 있는데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딸내미 때도 괜찮았다 힘들었다 하면서 (그래도 조금씩 우상향 하면서) 15주까지 입덧이 있었다. 덜 힘들어도 숙제 같은 걸 할 정신은 없고 유튜브 요리 영상으로 대리만족이나 하면서 멍 때리며 지냈는데, 이렇게 컨디션이 또 안 좋아지면 학기를 어떻게 버티나 싶다. 흐엉.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잘 버텨보자. 버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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