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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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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Feb 11. 2024

보통날의 설날 @뉴욕

미국생활 175일 차



설날이다. 우리는 맨해튼에 있는 데다 한인 사회에 속하지도 않아서 명절을 치르는 느낌을 특별히 없었다. 한국 설날 아침에 맞춰서 양가에 전화를 드린 어젯밤이 조금 명절 느낌이 났다면 났을까.



* 참고로 뉴욕은 다양성이 높은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혼자라도 설날을 즐기긴 쉽다. 학교 한인 동문회에서는 어제 설날 기념 저녁 식사가 있었고, 아시안 동문회에서도 중국의 사자 탈춤까지 볼 수 있는 저녁 식사 모임이 있었다. (모두 티켓 구매 필요) 플러싱이나 맨하탄 차이나 타운에 가도 아마 행사가 있었을 거다.


컬럼비아 한인 학생회 설날 행사 공지


어제 전화를 하는데 부쩍 딸내미가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만 3세)까지만 해도 조금 어색했는데 절하는 모습이 이젠 프로다. 특히 절을 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하면 세뱃돈을 받는다고 했더니, 진짜 제대로다. 이제 돈이 뭔지 아는 걸 봐도 많이 컸다. ㅎㅎ


보통은 영상 통화에 잘 집중하지 않아 양가에 연달아 전화드리는 일이 잘 없는데, 연속되는 통화에도 절과 새해 인사는 꼬박꼬박 집중해서 했다. 심지어 인터넷이 잘 안 터져 잘 못 들었다고 하니 여러 번 다시 얘기하기도 했다. 뉴욕의 물가를 고려해서 세뱃돈을 진짜 넉넉하게 받았는데, 그 돈으로 뭐 할 거냐고 했더니 딱히 계획은 없단다. 그냥 돈이 있다는 게 좋은가 보다.


그래도 나름의 설날 기분을 내려고 신경 썼다. 아침에는 떡국을 끓여 먹었다. 떡국은 끓여주려고 마음먹고 재료를 사뒀는데, 하필 오늘 컨디션이 더 안 좋아서 입으로 숨 쉬면서도 하지 못했다. 나는 거실에서 입으로 숨 쉬며 남편에게 지시를 내렸다. 남편이 꽤 잘 끓였는데 나는 고기 국물 냄새가 역해서 잘 먹지는 못했다. 이런. 그래도 설날 아침에 떡국을 챙겨 먹은데 대만족 했다.


남편의 떡국, 최대한 하는데 의미를 둬서 고기는 그냥 다짐육을 쓰고, 계란은 지단 하지 않고 풀어버리고, 대충 퍼올린데다, 김은 수증기에 이미 쪼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기선 보통날이라 오늘은 조모임을 했다. ㅋㅋ 오늘따라 새벽에 일어난 바람에 좀비 같은 모습으로 기어가서 2시간 조모임을 간신히 하고 오는 길에는 한인마트에 들렀다. 그래도 명절이니 전과 잡채를 좀 사 왔다. 저녁에도 냉동실에 있던 닭볶음탕과 꼬리곰탕을 꺼내 먹었다. 나는 입덧 때문에 좀처럼 못 먹었지만, 가족들이 그래도 잘 먹어서 기뻤다.


설날이라 그런지 미어터지던 한인마트


사람들과 새해 인사를 핑계로 간간히 연락을 한 것도 좋았다. 특히 얼마간 연락이 안 되던 친척 언니에게 새해를 핑계로 문자를 보냈다가 연락이 되었다. 진짜 친한 언니인데 연락이 안 되어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알고 보니 폰을 분실했었다고 한다. 잠깐 통화도 했는데, 무사히 지내는 걸 확인하고 또 언니에게 내 임신 소식도 전하고 응원을 받으면서 얼마나 힘이 나고 기쁘던지. 덕분에 새삼 따뜻한 명절 기분을 느꼈다.


딸내미를 재우면서는 양력과 음력, 신정과 구정,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해 줬다. 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새로운 얘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즐겁게 듣다가 곤히 잠들었다. 그래도 명절을 어찌 잘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오후에는 아이와 남편은 놀이터로, 난 기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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