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68일 차
주말이면 늘 뭘 하며 하루를 잘 때울지가 고민인데, 오늘은 센트럴 파크 피크닉 + 딸내미 친구네 초대로 잘 버텼다. 동기가 센트럴 파크 피크닉을 열면서 남편과 딸내미까지 초대해 줬다.
요즘 날씨가 엄청 오락가락해서 걱정했는데, 마침 날씨가 쨍하니 맑았다. 오랜만에 맑은 데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날이라 센트럴 파크가 미어터졌다. 동기가 파스타 샐러드에 각종 스낵, 음료들을 챙겨 와서 먹고 마시고 놀다가, 딸내미 나무 좀 태웠다가 산책도 좀 시키고, 동기랑 사진도 좀 찍고, 카드 게임도 좀 했다.
자기 가족, 학교 동기, 지인들을 모두 초대했고, 동기들이 졸업 시즌이라 방문한 부모님도 모시고 오면서, 굉장히 다양성 있는 모임이 되었다. 스위스 가까운 쪽 프랑스에 사는 동기 아빠,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인도인 여자애, 이탈리아에서 나고 호주에서 자란 동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나고 영국서 공부한 동기, 마케도니아 남자애, 애리조나 털사에 사는 변호사인 동기 엄마,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동아시아 포션은 우리 가족이 지켰고 ㅎㅎ 뉴욕에 있는 학교를 다녀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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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시간을 넘게 놀다가 바로 딸내미 친구와 플레이 데이트에 나섰다. 우선 놀이터에서 놀다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정이었다. 딸내미는 가는 길에 잠시 유모차에서 뻗고 바로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저녁은 찜닭이었는데 대성공이었다. 최근 한 달간 어쩌다 보니 손님 초대를 세 번이나 했는데, 모두들 만족도가 높아 뿌듯하다.
아무래도 요새 뉴욕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타이트한 주머니 사정으로 외식을 별로 안 하는 대학원생 동기들도 최근에 한두 번에 한국음식점을 간 경험은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일단 집에 초대하면 다들 기대감도 엄청 높고, 반응도 좋다.
딸내미가 친구 자매랑 잘 놀아준 덕에 그 집 부모와도 앉아서 밥 먹으며 얘기할 수 있었다. 자주 플레이데이트를 해도 얘기할 겨를은 없었는데 ㅎㅎ 그 집은 모르몬교라, 그 집은 모르몬교 문화에 대해서 우리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센트럴 파크 바로 옆에서 일본 거리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집 부모들도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건 모르고 있었다. 뭐 우린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라 몰라도 그러려니 할 텐데, 그 집 부모가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대체 세계사에서 뭘 배운 지 모르겠다고, 너무 편향된 역사를 배우는 것 같다고.
모르몬교 얘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미국 중부에서는 여전히 아이를 많이 낳는 경향이 있고, 모르몬교의 본거지가 그쪽이다 보니 모르몬교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경향이 있다. 딸내미 같은 반의 다른 모르몬교 집안 아이도 5형제인데 여기는 2 자매다. 뉴욕에서 사는 것도 좀 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좀 열려 있는 편이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집 엄마는 미국 모르몬교 1세대 집안이었다. 영국에서 넘어와서 웨건을 타고 정착할 곳을 찾아 유타주까지 이동한 American Pioneer가 선조라고 했다.
모르몬교들은 모여 살다 보니, 종교적으로 음식 가이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고유의 음식문화가 있다고 한다. 그 남편의 말로는 (남편은 같은 모르몬교지만 텍사스에 모르몬교 2세대라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자랐다.) 자극이 없기 그지없는 음식이란다. ㅎㅎ 자기는 처가에 가면 무조건 소금 후추를 쳐서 먹고, 집에서도 아내가 음식을 하면 모든 음식에 핫소스를 뿌린다고.
절제를 중시하는 모르몬교의 문화를 생각하면 자극적인 음식을 안 먹는 것도 이해가 간다. 대표적인 음식은 ‘Funeral potatoes’라고 불리는 감자 요리인데, 굉장히 얇게 썬 감자 위에 굉장히 밍밍하고 감칠맛 없는 치즈 소스를 뿌려 구운 거란다. 부부 둘 다 설명하며 질색팔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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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 친구네가 가고 나서 정말 뻗기는 했지만, 딸내미도 잘 놀리고 우리도 여러 문화를 접하며 잘 보내서 좋았다. 오늘 하루만 돌아봐도 진짜 뉴욕은 다양성의 천국이다. 같은 도시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여긴 진짜 우리나라의 반대 극단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즐겁거나 편한 것도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