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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ul 13. 2024

맨해튼에서 집 구하기_240711-2

미국생활 326-7일 차




어렵다. 이제 진짜 이사를 할 때라 집을 열심히 알아본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아이 학교 때문에 근처에 집을 구하려고 했지만, 일 년 계약을 하려는 학생들이 넘쳐나는 대학가에서 학기 시작을 앞두고 4개월짜리 단기 렌트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 동네에서 남쪽은 맨해튼에서도 집값이 특히 비싼 어퍼 웨스트사이드, 위로 올라가면 할렘이다. 두 곳의 가격 차이는 두 배 가까이 나는 것 같다.


남편은 싼 곳으로 가자고 엊그제부터 마음을 정했다. 할렘에서도 약간 외지에 적당한 매물을 찾은 후에는 손을 놨다. 하지만 나는 아이 둘 데리고 할렘, 그중에서도 약간 외지인 그 곳은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어제부터 오히려 전력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한참 신입생들이 집 찾을 때라, 학교 재학생 톡방도 이 주제가 핫하다. 하지만 여기서 안전하다고 한 지역은 이미 매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무리 예산을 올려도 이 근처나 어퍼 웨스트사이드에서는 적당한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한 달에 약 630-50만 원 정도가 평균인 것 같아 감당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연락해 보면 관리비나 수수료가 어마어마하게 더 붙어서 평균가가 850만 원은 되는 것 같았다. 단기 렌트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여러 군데 알아보다가 포기하고 할렘을 고려해 보기로 했다. 남편이 찾은 매물은 할렘에서도 내가 가본 적 없는 곳이라 오늘 직접 가보았다.


건물 자체는 멀쩡해보였는데…


가보길 천만다행이었던 게, 동네가 진짜 험한 느낌이었다. 아침 10시에도 부랑자들이 많았고 우리에게 ‘니하오’라고 괜히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에서 이건 약간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거리에 백인은 아예 없었고, 아시안은 존재만으로도 엄청 튀었다. 혼자서는 어떤 시간에도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돌아와서 할렘에서 그래도 조금 안정적인 지역 렌트를 찾아봤지만 마땅찮았다. 어제 없었던 게 오늘 생길 일 없지… 병행으로 알아보던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최저가 물건을 일 순위로 보기로 했다.


건물에 공용 런드리는 없지만, 근처에 런드리가 있다고 이런 사진을 홍보로 올려뒀다 ㅎㅎ


사실 여기도 마뜩잖았다.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비해 물건이 형편없었다. 공용 런드리룸도 없는 pre-war(세계대전 전 지어진) 건물이고, 꼭대기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집 안은 사진으로 보기에도 좁고, 낡았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중개인에게 하겠다고 했다. (대신 맨해튼에서 체류 일정을 한 달 줄이기로 했다. 원래는 귀국에 필요한 것보다 한 달 정도 여유를 더 잡았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중개인이 주인이 입주 날짜를 좀 미뤄야 한다고 했단다. 날짜는 (예정대로라면) 딱 내가 산부인과 퇴원하는 날. 안될 것 같지만 다른 옵션이 없었다. 가격을 더 지불할 수도, 이사를 미룰 수도 (이사에 큰 전력이 되어줄 아빠도 그다음 날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신다.) 없었다.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물건의 홍보용 사진 중 하나. 화재 경보기가 있어서 좋다는 뜻이겠지… ㅎㅎ


다행히 아빠가 얘기를 듣고 한국에서 중요한 일정이 있음에도 귀국 일정을 미루겠다고 해주셔서, 아예 제왕절개 예정일보다 일주일쯤 뒤로 입주일을 미루는 걸 제안해 놨다. 집주인이 입주일을 변경해서 이렇게 된 거니, 원하는 것보다 며칠 늦게 들어가는 건 양해를 해줄 법한데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이 건이 안되면 더 멀리 가야 될 것 같다.


진짜 스트레스다. 애초에 알아보는 것도 버겁고(이 곳 시스템도 배워가며 찾아야 했고, 우리가 단기 렌트고 외국인이라 안되는 물건들도 많다. 진짜 수도없이 까였다.), 예산은 넘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선을 계속 넘고 있고, 수용할 수 없었던 조건들을 계속 수용해야 한다. (어린애 둘이랑 엘베 없는 5층에, 애 낳고 일주일도 안되어서 이사라니)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 내 시간과 원하는 바를 희생하고 희생해도 끝이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랑 비슷한 기분이다. ㅎㅎ 예상을 넘어설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정도가 심하다. ㅎㅎ


나야 내가 애초에 이렇게 하자고 한 거지만, 내 선택을 따라줘서 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참 미안하다. 더 이상 알아볼 일 없이 이대로 마무리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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