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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첫째의 설움_240916

미국생활 392일 차

by 솜대리



첫째는 서럽다. 외동으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만 5살이 되도록 컸고, 둘째 낳고도 엄마/ 아빠/ 외할머니가 다 함께 있으면서 챙기는 데도 그렇다.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있다. 원베드룸에서 둘째랑 함께 사니 지나갈 때마다 ‘조심해’, 틈만 나면 ‘조용히 하자’ 한 마디씩 듣는다. 피곤한 아빠한테도 더 자주 혼나고, 부모님과 노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다들 둘째 낳고 나면 첫째 관리가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도 슬금슬금 그런 느낌이 있다. 엊그제는 ‘아빠는 맨날 놀다가 ‘이것만 하고’, ‘이것만 하고’ 하면서 간다’고 서럽게 울었다. 게임하다 마음대로 안된다고 집어던졌고 (평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어제는 화장실 앞에서 쉬를 했다. 보통 너무 재밌게 놀 때 마지막까지 참다가 그런 때가 있는데, 어른들이랑 오래간만에 밤에 노는 게 너무 재밌었나 보다. 나는 안타까운데, 남편은 그럴 때마다 매섭게 화를 냈다. 첫째는 수시로 눈물 바람을 했고.


아빠한테 혼나고 울다가, (엄마가 아빠한테 따뜻하게 해주라고 종용해서) 아빠가 안아줌 ㅎㅎ 서러운 입매 보소


결국에는 어젯밤, 괜찮아지던 아토피 난 피부를 대차게 긁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실제로 가려워지는 것과는 별개로) 더 긁고 더 찡얼거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엄청 긁고 엄청 울다가 아빠한테 또 혼났다.


나도 첫째라 둘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내 첫째가 많이 신경이 쓰였다. 훈육해야 할 건 임신 기간에 미리미리 해뒀고, 임신/ 출산 후 아무리 피곤해도 첫째랑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두려고 했다. 반면 남편은 정 반대였다. 애를 끔찍하게 예뻐하고 잘 놀아주긴 해도, 훈육에는 매서웠다. 공감을 먼저 해주고 따뜻하게 타일러 달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은영 박사와 금쪽이를 그렇게 신봉하더니 이럴 때는 꼼짝도 없다. 첫째가 나름대로 잘 버티고 대응하고 있고, 나처럼 감정이입을 너무 하는 것도 안 좋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미어졌다.


새벽에 첫째가 또 한바탕 울음 바람을 하고 다시 한번 남편에게 간곡하게 얘기했고, 어쩐 일로 알겠다고 했다. 본인도 내심 첫째한테 너무 화를 많이 내는 것 같다고 생각은 했단다.


첫째를 낳고도 남편이랑 육아문제로 많이 부딪혔는데, 둘째를 낳으니 더 그렇다. 첫째 문제, 둘째 문제에, 첫째 문제가 엮인 문제도 있고, 피곤함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흔히 말하는 대로 2배 힘든 게 아닌 것 같다. 갈 길이 아득하게 멀다. 그래도 경력직이라 그런지 아득하게 멀다는 게 감사하게도 느껴진다. 이 시기가 얼마나 짧은지 잘 아니까.




+) 나는 이렇게 쓰지만, 남편은 어제 블로그에 잘 우는 아이들을 자연선택한 조상들을 탓했다. 이놈의 대문자 T. 가끔 다른 F 남편들이 나처럼 이 시기가 지나가는 아쉬움에 대해 절절히 쓰는 걸 보며 나도 F 남편을 뒀으면 이 시기가 덜 힘들었을까 (아름답게 여겼을까) 생각해 봤다. 그건 또 아닐 것 같다. 극강 F인 나는 F의 감성에 정신 못 차리며 또 그거 나름대로 힘들어했겠지.


(자연선택에 대해 한탄하는 남편 블로그. 읽으면 재미는 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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