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07일 차
오늘은 둘째를 낳고 첫 외식을 했다. 뉴욕에 출장 오신 고모부가 밥을 사주신다고 해서 남편과 둘이 나섰다. 애들 없이 둘만 나서니 어색할 지경이었다. ㅎㅎ
간 곳은 하이엔드 그리스 음식점이었다.
문을 열어주는 도어맨, 자리로 가며 보이는 거대한 생화 장식과 대리석, 작은 물 웅덩이 등으로 보아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고급 식당임을 알 수 있었다. 이름 있는 곳이라 일요일 저녁임에도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그리스 음식점이니 해산물을 위주로 먹었다. 마트에는 해산물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연어나 새우인데, 여기는 해산물 종류도 다양했고 진짜 신선했다. 미국 식당 음식은 웬만해선 짠데, 여기는 우리 입맛에 맞았다. 미식가인 고모부가 미국도 고급 식당은 재료가 신선해서 간을 세게 안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양고기 스테이크조차 간이 세지 않았고, 향신료 맛도 거의 안 났다. 굽기도 얼마나 잘 구웠는지 해산물도 고기도 보들보들했다. 맨날 애들에 치여 정신없이 먹다가 가만히 앉아서 서비스받으며 먹는 것만 해도 좋은데, 음식까지 맛있으니 정말 행복했다. ㅎㅎ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진짜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을 빼고는 행복을 논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먹은 음식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나거나 이런 건 전혀 아닌데도, 먹는 것 그 자체가 내겐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먹는 게 일시적인 쾌락만은 아니다. 맛있는 걸 먹을 계획이 있으면, 먹고 나면 그 전후로 전체적인 행복감이 올라간다. 과거의 일을 기억할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은 그 순간이 기점이 되곤 한다. 맛있는 걸 많이 먹을수록 과거에 기억할 기점이 많아지고, 과거가 더 풍부해지는 것이다. 때론 맛있는 음식 하나 먹은 게 당일치기 여행 한번만큼의 추억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난 맛있는 걸 좀 더 자주 많이 먹어야겠다. 남은 기간 더 분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