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20일 차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서 식당 테라스 자리 외식은 영영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로 기온이 23도까지 올라갔고, 날도 화창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과감하게 외식을 시도했다.
둘째가 아직 두 달이 안 되긴 했지만, 우리가 뉴욕에 있는 동안 이렇게 따뜻한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워낙 여기서는 이 정도 된 아이들 데리고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안 나가겠다는 첫째는 프렌치프라이를 사주겠다고 꼬셨다. 누구누구 가냐고 하길래 (요새는 둘째 때문에 온 가족이 외출하는 일은 없었으니) 농담으로 둘째만 두고 간다고 했더니 울상을 했다. 농담이라고 했는데, 나가는 내내 둘째를 찾아댔다. ㅎㅎ 귀여운 언니다.
식당 선정 조건은 무조건 ‘빛 적당히 잘 드는 테라스 자리가 있는가’였다. 여기서는 그 조건을 만족하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고층 건물들 때문에 1층은 햇빛이 안 드는 경우가 많고, 보수공사를 하는 건물이 태반인데 그런 경우에는 1층과 2층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하게 되어 있어서 야외 자리가 있어도 공사장 밑인 경우가 많다. 집 근처에 있는 중동 음식점을 갔다. 여기도 동네에서 드물게 그런 조건을 동네에서 드물게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바깥 테이블 12개 정도 중에 우리 포함 3 테이블이 갓난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나중에는 딸내미 같은 반 친구도 오고.
쿨하게 나갔지만 아이들이 잘 있어줄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선방했다. 음식도 차분히 다 먹었고 남편과 중간중간 대화도 했다. 둘째는 대부분의 시간 자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첫째는 우리와 함께 잘 있어줬다. 예쁘고 맛있다고 내일 또 오잔다. ㅎㅎ
여기 와서 첫째랑은 외식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애 데리고 나가는 것부터가 일이고, 가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간혹 가더라도 중간부턴 동영상의 힘을 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영상 한 번을 안 보고 잘 있었다. 오히려 둘째가 깬 걸 보고 가서 놀아주기도 하고. 지난 생일 때도 느꼈는데 정말 첫째는 최근 부쩍 컸다.
네 가족 첫 외식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 성공이었다. 준비하고 오가고 먹고 하면서 시간도 잘 때우고 ㅎㅎ 한국에서 먹어보기 드문 음식들을 먹는 것도 좋았다. 앞으로도 갈 때까지 주말에 한 번씩 외식을 할까 보다. 실패하는 날도 당연히 있겠지만(우리 앞 테이블에 아기 데리고 온 집은 아빠가 엉덩이도 붙이지 못하고 내내 둥가둥가를 했다.)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게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