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54일 차
진짜 땡스기빙 주간에 접어들었다. 도시가 들썩들썩하는게 느껴진다. 낌새는 지난주부터 만연하긴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땡스기빙 계획을 서로 얘기하고 티비에서도 툭하면 그런 얘기를 해서 심지어 아침 뉴스 앵커들의 계획까지 알게 되었고, 가게마다 땡스기빙 음식 사전 주문 예약 포스터를 내걸었다.
이미 땡스기빙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땡스기빙 주간으로 접어드니 느낌이 또 다르다. 무엇보다 식료품 쇼핑이 힘들다. 어제는 집 근처 파머스 마켓에 처음으로 가봤는데 육류, 베이커리, 유제품 가게에 줄이 엄청 늘어섰다. 나도 덩달아 유제품 가게에 줄을 서봤는데 앞에 20명은 서 있었다. 같이 줄 선 사람에게 물어보니 평소에도 줄을 서지만 이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이 대화 얘기를 들은 남편은 나보고 미국사람 다 됐다고 했다. ㅋㅋ)
오늘 간 트레이더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주부터 트레이더조스에 유기농 계란이 안 보이더니 오늘은 계란이 아예 없다. 전멸. 가게 구성도 완전히 땡스기빙 위주로 바꿨다. 평소에는 프로모션 과일들이 있던 곳은 파이 재료칸으로, 야채칸은 터키 스터핑을 위한 손질 야채 위주로 바뀌었다. 고기 칸에도 지난주보다 터키 비중이 훨씬 늘었고. 사람들한테는 괜히 뭔가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딱 추석 며칠 전에 장보는 느낌이었다.
딸내미도 학교에서 터키 색칠 숙제를 받아왔다.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에서는 땡스기빙을 주제로 콜라주를 해오고. 딸내미도 바람이 들어서 터키를 먹고 싶단다. 마트에서 워낙 조리된 음식, 반조리 음식을 많이 팔아 마음만 먹으면 한번도 땡스기빙 요리를 안해본 나도 손쉽게 차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친구네에 초대받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거기 때문에 평소에는 왠만하면 딸내미 얘기를 들어주지만 기다리라고 했다. 마트에서 파는 조리된 음식으로 김을 미리 새게 할 수는 없다. ㅎㅎ
우리는 땡스기빙과 별 상관이 없지만 워낙 들썩들썩하다보니 나도 뭔가 사전 예약도 하고 요리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작년에는 땡스기빙 주간을 그냥 휴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 해 더 있었다고 느낌이 다르다. 여유가 생겨서 주변이 더 보이는 건지, 현지 생활에 더 녹아들고 교류하는 사람도 더 많아져서 그런건가. 한 해만 더 있으면 음식하고 사람 초대까지 하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