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의 감상
우리 집 제사상에 꼭 올라오는 음식이 있다. 배추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 부친 배추전이다. 배추전은 제사상에서 눈에 잘 띄는 음식은 아니다. 하얗고 얄팍한 배추전은 두툼하고 먹음직스러운 동그란 땡, 화려한 색깔은 산적 등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손이 가는 음식이 배추전이다. 제사상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이 강하다. 덕분에 첫 한 입은 맛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입 안이 텁텁해진다. 이때가 배추전이 등판할 때다. 이럴 때 아삭하고 깔끔한 맛의 배추전을 먹으면 입 안이 차분하고 개운해진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 식으면 기름내(소위 '쩐내')가 나는 다른 음식과 달리, 배추전은 식으면 식은 대로 깔끔하고 맛있다. 눈에 잘 띄진 않아도 배추전이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았던 이유다.
그래서 배추전이 우리 지역, 경상도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 놀랐다. (일부 다른 내륙 지방에서도 먹기는 하나 경상도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다.) 우리 식구들이 워낙 잘 먹는 음식인 데다, 배추도 전국구 재료이니 당연히 다른 지역에서도 다 먹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단 걸 알았던 건 대학 때다. 명절 귀경길을 앞두고 여러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명절 음식을 하는데, 배추전 맛있지 않냐는 내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들 그게 뭐냐며, 맛은 있냐는 반응이었다. 상어 고기 같은 음식은 경상도만 먹는 음식인 걸 알았지만, 설마 제사 음식 중 약방의 감초 같은 배추전도 지역 음식일 줄은 몰랐다. 배추전이 나만 아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더 배추전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몇 년 후, 배추전이 정말 특별해지는 계기가 있었다. 결혼하고 맞은 첫 명절 때였다. 시댁도 아직 낯설 때였어서 큰 아버님 댁에서 치르는 명절은 무척이나 어색하고 어려웠다. 아버님이 셋째긴 하지만 남편 사촌들이 다 결혼 전이라 나는 그 집안의 첫 며느리였다. 즉, 나는 수십 년 만에 처음 등장한 뉴 페이스였다. 20평이 조금 넘는 작은 아파트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였는데, 오붓하다기보단 막막했다. 다들 새 식구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입고 있던 한복만큼이나 그 공간과 시댁 식구들이 낯설었다. 차라리 일이라도 할까 팔을 걷어붙여봤지만 이 또한 소용없었다. 수 십 년 간 손발을 맞춰온 어머님들 사이에서 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엔 뭘 하지도 못하고 안 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부엌에서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도무지 지나지 않던 시간도 결국에는 지나갔다. 준비를 끝내고 제사도 마치고 먹는 시간이 되었다. 얼른 음식을 먹고 정리만 하면 큰 댁에서의 시간은 끝이었다. 상을 차린 후 드디어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불편함은 끝나지 않았다. 친척들과 동그랗게 둘러앉고 나니 오히려 시선조차 피할 수 없었다. 다들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었지만 워낙 서로 모르니 이어나갈 이야깃거리도 없었다. 대화는 자연스레 내가 모르는 추억과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야기를 억지로 이어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다. 딱히 입맛이 당기진 않았지만 음식에 집중하는 척했다.
하지만 음식 쪽도 딱히 반갑지는 않았다. 음식도 상차림도 친정집과 얼추 비슷해 보였지만, 보면 볼수록 달랐다. 예를 들면 동그랑땡과 산적 꼬지. 둘 다 우리 집에서 먹는 음식이긴 하지만 모양도 맛도 달랐다. 도톰한 우리 집 동그랑땡과 달리 이 집 동그랑땡은 납작했다.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써서 맛도 달랐다. 산적 꼬지도 모양과 재료가 모두 달랐다. 아예 음식의 종류가 다르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고기류로 돼지 수육을 쓰는데 여기서는 육전과 삶은 닭, 튀김을 썼다. 우리 집에서는 잡내 없이 보들보들하게 삶아 얇게 저며낸 수육이 명절 인기 음식인데, 그런 수육이 안보이니 괜히 섭섭했다. 수육의 인기를 여기선 육전이 대신하는 모양이었다. 육전 위로 빠르게 오가는 젓가락 사이로 시어머니가 육전을 한 점을 집어내 챙겨주셨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분위기도 음식도 낯설어 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먹었다. 육전이 그랬으니 튀김과 삶은 닭은 더더욱 낯설었다. 육전이야 전의 일종이고 라고 쳐도, 튀김과 삶은 닭은 제사상과 연관 지어 본 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음식이 얹힐 것 같은데, 데우지 않은 찬 음식은 소화불량을 더 돋우었다. 큰댁에서는 전을 전혀 데우지 않고 그대로 냈다. 워낙 대가족이기 때문에 빨리빨리 음식을 내기 위해 전을 데우지 않고 낸다고 했다. 긴장한 상태에서 차고 기름진 음식들을 먹자니 목이 턱턱 메어왔다. 그때였다. 배추전을 발견한 건. 다른 전들에 묻혀 있지만, 하얗고 널찍한 게 배추전이 틀림없었다. 슬그머니 젓가락을 뻗어 끌어내 보니 역시나 였다. 큼지막한 잎 한 장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 구워낸 것이 모양새도 우리 집과 똑같았다.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준비해 두셨던 걸까, 전 부칠 때는 보지 못했었는데. 작은 것 한 조각을 집어 입에 가져다 넣었다. 아, 배추전이 맞다. 내가 아는 그 아삭하고 심심한 맛이었다. 깔끔한 맛의 배추전을 먹으니 목에 걸린 음식들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배추전이니까, 식어도 맛있었다.
다른 음식을 두고 배추 전만 먹었다. 괜히 궁상이란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자꾸 배추전으로만 손이 갔다. 더더욱 궁상인 건 먹으면 먹을수록 친정 생각이 났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면 우리 집에서도 제사를 다 치렀겠지', '우리 엄마는 또 먹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챙긴다고 왔다 갔다 하고 있겠지', '여기는 일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 집에서는 엄마 말고 누가 일하고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멈추지 않고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자꾸만 목에서 뜨거운 기운이 울컥울컥 넘어왔다. 싸늘한 마룻바닥 위에서 찬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배추전을 먹고 또 먹었다. 차갑고 시원한 배추전이 그 뜨거운 기운을 좀 식혀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