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순간
대학 때 알던 사람의 소식을 몇 년만에 알게 되었다. 수십만의 팔로워가 있고, 간혹 광고도 찍는 인스타그램 셀럽이 되어있었다. 친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전공과 비슷한 학교 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또래의 사람이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예전에 남편이 라디오 방송에서 아는 형의 목소리를 듣고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었는데 이런 기분이었나 보다. 이젠 뭔가 이뤘어야 할 나이. 더 이상 장래 희망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장래 희망이 되어야 하는 나이. 가뜩이나 넥스트 스텝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이라 더더욱 싱숭생숭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한다면, 잘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한 여성 기업인 강의를 들었을 때 그분이 사업에 뛰어들기 앞서 자신의 상대 우위를 고민했다는 얘기를 했다. 나를 돌아보았다. 예쁘거나 감각 있거나 해서 인스타에서 뜰 것도 아니고, 꼼꼼해서 요리 레시피를 남을 위해 잘 정리할 것도 아니고. 잘하는 거란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 파고들고, 정리하고, 실행시키기. 이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 관심사를 생각해볼까.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전문가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나저나 이런 생각만 대체 몇 년째 인지. 일단은 뛰어들어야 하는 걸까.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디에 뛰어들지도 모르는 상태인걸. 삶에 대한 내 태도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닐까. 꼭 잘해야만 할까. 이렇게 안달복달해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더덕 손질을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덕이 모두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휴일에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동안 이 고민을 하겠구나 싶어 단순노동 거리를 찾았는데, 딱 알맞은 노동 거리였다. 며칠 전 좋은 더덕을 싸게 팔길래, 두 식구 살림에 좀 많다 싶었지만 한아름 사뒀다. 사실 사면서도 더덕손질이 걱정이었는데, 한번 해 먹고 나니 정말 한동안 못 해 먹겠다 싶어서 냉장고 깊숙이 넣어뒀었다. 더덕구이 한번 하자면 껍질을 까고 쪼개고 두들기고 밀고, 초벌구이에 재벌구이까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며, 먹고 나서도 더덕 특유의 끈적끈적한 진액 때문에 뒷정리가 귀찮다. 하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처럼 좋은 일도 없다. 열심히 손을 놀리며 생각하다 보면, 딱 알맞게 정신도 체력도 지친다. 한 번 먹을 더덕이 남았는데, 또 이럴 때 해 먹으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