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업심리#01.한국 기업사회 게임의 룰이 달라지고 있다

인구구조와 인식의 변화 그리고 리더들의 역할과 과제

(이미지출처: unsplash)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는데, 사무실이 텅 비었더라고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좋지만 이 시간에 다 퇴근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싶었어요."(A임원)


"본인의 권리만 따지는 것 같아요. 우리 때는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회사를 위해서라면,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B부장)


"일은 우리의 절반, 연봉은 우리의 2배, 열심히 하다가도 그분 때문에 일할 맛이 사라져요."(C대리)


한국 기업들의 사무실 풍경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회사와 일에 대한 열정도 시들해 보이고 직장에서 성공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 것 같다. 상사와 동료들 간 인간관계도 이전같이 않다. 심리학자 입장에서 현재 한국 기업이 직면한 중요한 변화의 두 축은 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등장과 50대 직장인 증가라는 인구 구조 변화와 함께 그에 따른 구성원의 인식 변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달라진 마음의 지도

집단공동체는 과거 한국 기업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함께 어울려 일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그런 희생을 묵묵히 참고 견뎠다. 의무 방어처럼 돌잔치에 오가야 했고, 통과 의례처럼 집들이를 해치웠다. 워크숍을 빙자한 야유회나 엠티도 흔한 일이었다.


한국의 집단공동체는 정서적 유대감, 동질성, 일체감 같은 심리적 연대감 등이 확대된 가족의식을 반영한다. 즉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며 정을 쌓는 것이 필요하며 그 결과 남과 우리를 구분 짓고 결속을 강화했다. 그리고 이런 심리는 공과 사의 구분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조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적인 관계망을 만들고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조직 내에서 학연·지연과 같은 연고주의가 만연하고 누가 누구와 친한지가 인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녁에 술 먹고 사람 많이 만나고, 거기서 내가 열외가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그런 게 있었지요."(D부장)


인간관계가 절대적인 조직문화에서는 그 관계망에 들어가지 못하면 소외되고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자발적인 모임과 관계가 점점 많아진다. 이게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와 결합하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된다. 그나마 위안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맞물리면서 달콤한 결과도 따라왔다는 점이다. 회사도 성장했고 나도 승진했으며 월급봉투도 두꺼워졌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다.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에 대한 충성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상황의 변화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전체적인 성장률 추이는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둔화된다. 국가도 기업도 과거처럼 두 자릿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성장이 정체되자 비교가 일상화됐다. 과거와 현재, 나와 남, 우리 회사와 다른 회사를 비교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는 늘 상향 비교다. 내가 갖지 못한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하고, 다른 회사의 장점과 우리 회사의 단점을 비교한다. 결과적으로 온통 불만만 남는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 가치가 쇠퇴하고 개인주의 가치가 증가했다. 그리고 이 개인주의 가치는 이기주의와 혼동돼 나타나고 있다.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의 전환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와 맞물려 50대 고직급자와 밀레니얼 세대라는 커다란 인구 집단이 전면에 등장했고 이로 인해 조직문화가 급격히 변화되고 있다.


저성장기에 개인주의 가치관을 지닌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가 나를 지켜주고 키워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들은 선배 세대와 달리 조직에서 성공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즐기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일부는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이들도 선배 세대와 다르다. 이들은 진급이 잘되는 부서나 엘리트 코스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기의 경력 관리는 자기가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일이나 사람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대책이 없어도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 기성세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을 이들은 실제로 한다.


보직을 받지 못했거나 보직을 상실한 50대의 무기력함도 기업이 당면한 핵심 과제다. "그냥 버티는 거죠. 한 달 버티면 월급이 나오는데, 어디 가서 이 월급 받겠어요."(E차장)


정년까지 보직 없이 근무하는 50대의 생산성 문제와 인건비 부담 그리고 느슨한 업무 태도가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 뭔가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회사의 속내가 복잡하다.


대학 입학했으니 논다 Vs. 입사했으니 논다

모든 현상에는 이면이 있다. 기성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한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경험들이 깔려 있다. 1980~1990년대 대학을 한 번 떠올려보자.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이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 입학하지만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운동, 아르바이트, 연애 그리고 고시 준비 등 다양한 관심과 활동으로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 결과 졸업할 때 처지는 천양지차였다. 당시 '대학 입학=고생 끝'이었다. 그들이 지금의 기성세대다.


그랬던 캠퍼스 풍경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성적이나 생활 배경이 유사한 학생들이 입학했지만 선배 세대처럼 놀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입시지옥 이후에도 입사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 4년 내내 공부와 스펙 쌓기, 간혹 연애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졸업할 무렵에도 학생 간에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대학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현재 대기업에 입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낀다. '대기업 입사=고생 끝'이라는 심리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과거 대학에 입학해서 놀던 행위를 이들은 입사 이후 안정된 입지를 구축하고 워라밸로 추구하는 것이다.


기업 기존 경영관습 버려야
균등 보상은 관료화만 심화
공정한 평가로 차등 배분을

공채 출신 충성심 희박해져
부서장이 직접 경력채용 후
인사과는 추인하는 방식 돼야



회사와 리더들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달라진 게임의 룰(규칙)은 우리 대처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일사불란한, 가족 같은, 끈끈한, 희생과 헌신'처럼 과거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다. 또 대규모 공채, 호봉제, 균등 배분, 정년과 임금피크 등 고도 성장기에 설계된 인사관리 제도로 현재와 미래를 설계해서도 안 된다.


먼저 성과와 결과로 말할 수 있는 그리고 구성원들의 평가와 보상에 대한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성과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농업적 근면성이 아니라 효과성과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 성과와 결과에 따른 차등이 뒤따라야 한다. 열심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평가와 보상은 관료화를 심화시키고 하향 평준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일의 중요도·난이도·기여도에 따라 평가와 보상이 달라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엄격한 배분 비율을 강조하는 상대평가나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하는 호봉제(연봉제라 부르기는 하지만)가 앞으로도 유효할지 따져볼 때다. 이런 논의는 특히 공정한 평가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둘째, 팀장이나 파트장 같은 일선의 리더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역할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단위 조직에서 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누가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일선의 리더들이다. 이들이 효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려면 구성원의 승진, 이동, 성과급 결정 등에서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일의 목적과 가치를 중심으로 구성원이 좀 더 자기주도적으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리더의 역량도 개발해야 한다. 코치나 파트너로서 수평적인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리더들과 인사담당자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리더와 인사 부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의사결정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인사관리 제도를 정교화하면서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런 정교화는 동일한 기준·절차·방식을 적용하면 평가자의 개인차를 제거할 수 있다고 전제하지만 심리학자 입장에서 이런 기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점에 따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평가자의 '인식과 해석'에 따라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평가 과정과 결과에 대한 구성원들의 주관성도 작동한다. 그러니 그 편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제도의 정교화에서 더 나아가려면 먼저 인간의 마음에는 타고난 왜곡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왜곡 현상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객관성 못지않게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지 탐색해야 한다.


넷째, 이미 여러 대기업에서 선언했듯이 채용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기술적 환경이 더 이상 대규모 인력 충원을 기대할 수준이 아니다.


또한 고용 안정성에 대한 요구는 커진 반면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희박해졌다. 더 이상 조직을 위해 희생하거나 참고 견디지 않는다. 내 기대와 다르면 쉽게 이직도 한다. 이미 여러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공개채용에서 소규모 수시채용으로, 신입사원 중심 채용에서 경력사원 중심 채용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변화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장 중심의 채용 결정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사 부서에서 선발해 현장에 보내는 수시채용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현장에서 추천하고 인사 부서에서 추인하는 절차와 구조로, 인사와 현장의 역할이나 권한에 대해 조정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지금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큰 일이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니아 연대기를 쓴 작가 C S 루이스가 말한 이 경구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옥으로 향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고, 바닥은 부드러우며, 갑작스러운 굴곡이나 이정표와 표지판이 없는 완만한 길이다."




작가의 이전글 50대 직장인을 바라보는 동상이몽(#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