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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스토리#07.중년 남자의 사회적 완벽주의

(이미지출처: unsplash)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자살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13,799명으로 이 중 남자가 70.5%, 여자는 29.5%를 차지했다. 10만 명당 비율로 보면 남자(38.0명)가 여자(15.8명)보다 2.4배 높다. 


남자라는 사실과 자살률의 관계

왜 그럴까? 남자라는 사실과 자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자살의 원인으로 우울증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자살을 연구하는 오코너 연구소의 조사 결과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 중 실제로 자살을 선택하는 비율은 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우울증의 많은 증상들이 건강한 사람에 비해 자살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하고, 좀 더 쉽게 자살을 시도하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울증에 걸렸다고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즉, 우울증이 자살을 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거다. 오코너 연구소는 자살의 원인에는 사회적 완벽주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완벽주의라는 신념이 남자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완벽하거나 완벽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완벽주의자는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감추려하거나, 완벽해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감정적 측면, 신체적 측면 그리고 인간관계적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자살까지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다.” 

토론토 요크대의 심리학자인 고든 플렛 교수의 말이다. 결국 사회적 완벽주의자는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높은 기준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높은 기대수준에 맞추어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며,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미국 사회 대부분의 남자들은 성공, 즉 돈, 권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스스로가 실패했다고 여기며, 그 실패를 오직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고 한다. 문제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남자들에게 더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는 거다. 이들은 이제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아버지로서도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수록 남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실패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많아지고 있다.


비슷한 심리적 기제가 우리나라 50대 남자들의 자살률에도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우리나라 50대 남자들은 유교문화권의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으로 가장으로서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배우고 성장했다. 


“내가 내 가족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이런 책임감이 이들의 삶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직장에서 경쟁에 뒤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나 조기퇴직의 불안감은 50대 남자들에게 스스로를 실패한 가장으로 여기게 만든다. 


“가족은 보호해야 할 대상인거죠.
그런데 내가 잘못되니까 가족을 난파선을 태운 것 같더라고요.” 


남자들은 가족들을 보호하고 아끼며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족을 책임질 수 없는 남자는 어떤 면에서 더 이상 남자가 아니게 된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바우마이스터의 말이다.


체면 때문에 남부끄러운 남자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체면문화도 50대 남자들을 괴롭힌다. 

체면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의미하는데, 떳떳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은 물론이고 능력 또한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갖추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했던 최상진교수는 이런 부끄러움을 ‘자괴성 부끄러움’과 ‘창피성 부끄러움’으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자괴성 부끄러움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이 때 부끄러움이나 떳떳함을 결정하는 준거는 자신이 설정해놓은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도덕성, 즉 양심이다. 도덕적으로 자신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염치가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거다. 그래서 매스컴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양심 없고 염치없는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들이 우리처럼 부끄러움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부끄러움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수준이나 기준은 다르지만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하면 떳떳한 행동이다. 반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부끄러움이 생기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기 반성적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자괴성 부끄러움을 도덕성 부끄러움이라 부르기도 한다. 


‘창피성 부끄러움’은 남을 통해서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즉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거나 도리에 어긋났다고 느끼는 창피함이다. 그래서 ‘창피 당했다’, ‘남부끄럽다’고 표현한다. 사실 우리는 인격의 성숙보다 자신에 대한 세속적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체면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상황을 보면 도덕적 기준보다는 능력이나 신분, 지위가 부끄러움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높은 지위를 가지지 못하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지 못하면 친구 만나기가 창피하고 그래서 동창회 같은 모임에 나가기가 꺼려진다. 직장에서 퇴출당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도 남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일상에서 느끼는 남부끄러움의 원인에는 능력과 관계된 것이 많다. 이렇게 능력 때문에 느끼는 부끄러움의 심리적 기제는 자기 자신이 ‘유능하지 못한 사람’,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열등 의식이다. 그래서 창피성 부끄러움의 다른 표현은 ‘능력 부끄러움’이다. 자괴성 부끄러움과 달리 창피성 부끄러움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 부끄럽게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되고 다른 사람에게 무시나 비난 같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의 강도가 더 세다. 


남자들은 직장의 중심에서 밀려나거나 명예퇴직처럼 원치 않는 퇴직을 하게 되는 상황을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남 보기에 창피하고 부끄러워 점점 위축된다. 물론 여자들도 직장을 잃었을 때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이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씩씩하고 현명하게 잘 대처한다. 반면 남자들은 직장을 잃었을 때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좌절한다. 


안타까운 것은 남자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많죠. 왜냐하면 사실 창피한 게 많죠.
내가 왜? 이런 생각이 많이 드니까. 모임에도 한동안 못 갔죠.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또 알리기 싫고.
퇴직했다고 당장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남자들의 좌절감은 여자들과 다르게 나타난다. 여자들은 울거나 하소연을 하거나 음식으로 해결하는 등 자신들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남자들은 술을 마시거나 사람들을 피해 숨는 등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덮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숨겨진 좌절감은 남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상태를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 결과 50대 남자의 자살률을 높이는 커다란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남자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삶의 태도

살면서 최소한 어느 수준까지는 성공해야 하고, 최소한 어느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또 인생은 어떠해야 한다는 빡빡한 기준을 세우는 모든 시도가 남자의 사회적 완벽주의 탓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학교, 높은 지위 그리고 넉넉한 돈처럼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서 나와 가족들의 삶이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기대가 우리의 마음을 더 피폐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런 남자다움과 사회적 완벽주의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적인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는 50대 이후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체면과 부끄러움에 대한 나의 기준도 점검해 봐야 한다.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 능력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오직 그 기준만 가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가끔 공공장소에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어르신들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의염치를 차리는 것, 도덕성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자기인식 능력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적절한 정서표현이나 심정표현도 중요하다. 자립이라고 하면 혼자서 무언가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립의 진정한 뜻은 그게 아니란다. 자립이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 만약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 해결해나간다는 뜻이다. 자신이 아무 요청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요청해야 한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요?”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이렇다. “이야기해도 모릅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이 배고프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미리 알아주고 배려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한 자신의 생각은 타인에게 전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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