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미련들을 새로고침할 시간.
내일이면 지금 묵는 오피스텔에서 보낸지 1년이 된다. 작년 오늘 이맘때즈음, 75리터 쓰레기 봉투에 버릴만한 것들을 잔뜩 넣어두고, 가져갈 것을 박스 채로 잔뜩 쌓아두었던. 봄처럼 설렜던 날이 불현듯 떠올랐다. 새로운 출발. 떨리기도 했고 조금은 설레기도 했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불쑥 두려움도 솟았다.
이사 당일 날 아침은, 일찍부터 분주했다. 보기 좋게 잠을 설쳤고, 졸음을 달랑달랑 매단 채로 나는 그날 그 곳으로 새로 둥지를 트는 임차인의 계약 완료와 '입금'을 기다렸다. 돈을 받아야 바로 집주인에게 잔금을 치르고 이사를 무사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시에 시작된 계약은 이유 없이 지체되었고, 마음이 급했다. 대출을 전 남편 명의로 해 두었었기 때문에 잔금을 직접 받을 수도 없었다. 전남편에게 입금된 돈을 내 계좌로 이체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이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한시간 안에는 끝내야 했다. 입금을 독촉하는 연락이 계속해서 오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집을 공동 명의로 해 둘걸...’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었다. 집을 계약할 때야 이혼할 때를 생각하지 않고 했으니까. 헤어질 때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렵사리 잔금 입금을 마쳤을 때엔 입었던 셔츠가 흠뻑 젖어 있었다. 계속해서 오는 연락에 등골이 서늘했던 작년 오후를 떠올리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이사할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7평이 조금 안 되는. 좁았지만 수납 공간이 많았기 때문에 별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아뿔싸. 내가 가져간 박스들이 공간 안에 전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차고 넘쳤다. 침대, 피아노, 침대 사이드에 들어갈 작은 책장 두 줄. 조그만 책장 하나를 놓으니 집이 꽉 찼다. 다른 가구를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을 정도로 작았다. 그래서 결국, 2-3일을 박스를 바깥에 두고 물건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관리실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 차고 넘치는 물건을 이미 버리고 왔는데도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하는 사람처럼 버리고 또 버리고, 더 버렸다. 최소한의 모든 것들이 겨우 들어왔을 때, 유기묘 시안이가 내 삶에 들어왔다. 어수선하고 좁은 공간을 스윽, 둘러본 묵직한 생명체는 원래 여기 있었던 것처럼 가만히 둥지를 틀었다. 물건을 비워낸 자리에 미련 대신 온기가 들어찼다. 7평의 좁은 방은 그렇게, 비로소 나의 집이 되었다.
이사한지 1년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내 공간은 물건들로 가득차 있다. 늘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작은 취향들이 조금씩 늘어버린 탓이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이 되니 또 한소끔 버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기 시작했다. 사실 미처 살펴보지 못한 안쪽엔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한참 더 있을 것이다. 미련을 깎아내듯 그것들을 비워내야, 다시금 마음 깊숙이 채워낼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날 것이리라.
이사 1주년을 맞이한 오늘 오후, 나는 호기롭게 '이사 기념일'을 선포한다. 곧 새로고침할 내 방의 조감도를 상상하며.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사락 열어두고, 방문을 활짝 연 채 이제는 과거가 된 취향들을 시원하게 쓸어 담는 그런 오후를 말이다.
얄궂은 미세먼지를 차치하고서라도
마침 봄은 창을 열기 딱 좋은 온도고,
무언가를 정리하기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