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5] 밤 12시, 문장의 숨을 고르는 시간

쓰는 시간이 주는 밤의 위로.

by Sunyeon 선연

최근 가장 기쁜 시간이 언제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하루의 전투를 끝내고 키보드 앞에 앉는 순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루의 먼지를 온몸에 눅눅하게 묻힌 채로 귀가해 묵직한 고양이의 엉덩이를 툭 툭 토닥여주고 나면 나른한 피로감이 공기 위로 눅진하게 내려앉는다. 땅콩 한 줌으로 허기를 채우고 적당한 온도의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롯이 내 시간이다. 캣타워 옆, 이동식 테이블로 가만하게 만들어진 공간 위에 작은 조명을 켜고 노트북의 전원을 올린다. 키보드 불빛이 은은하게 소리 없이 켜지면 의자를 빼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쓰는 시간.’


최근 루틴에 문장을 짓는 시간을 추가했다. 집필을 시작한 책의 꼭지들을 하루에 하나씩 써 내려가는 중이다. 조르륵 내리쓰기를 하는 동안 시안이가 옆 캣타워에 가만히 몸을 앉힌다. 키보드 위에 앉는 경우가 있어서, 키보드 위에 작은 타월을 덮어 둔다. 이 또한 하나의 루틴이다. 따끈한 불빛이 적당한 조도로 내려앉은 순간들을 가로지르며 자모음을 타이핑한다. 도독도독 기분 좋은 소리가 공간에 스민다.


내리쓰기를 30분 정도 하면, 윤문 작업을 한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조합하며, 문단의 길이를 잰다. 알맞은 표현을 고민하고 다 된 문장에 조미료를 치거나, 가끔은 깍둑썰기를 한다. 쉽지만 어려운 작업이다. 가끔은 문장을 해부하는 의사가 되기도, 이따금은 요리사가 되기도 하는 글 쓰는 시간은 스스로를 투명하게 돌아보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시간이라, 가끔 글 속에 빠져 시간을 잊고는 한다.

쓰는 것보다, 고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들어 가끔은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어떤 순간에 푹 빠진다는 것은 무언가를 잊는 것이구나. 새삼스레 피식 웃음이 난다.


스스로의 경험을 문장으로 옮긴다는 것은 쉽잖은 일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글이라면 매무새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거울을 보는 사람처럼 문장을 짓기 위해 마음을 새로고침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매일의 글쓰기 루틴이 몸에 완벽히 배지는 않았지만, 이 루틴이 언젠가 딱 맞는 옷처럼 익숙해지면 조금 더 스스로의 문장을 사랑할 수 있게 되겠지, 누군가에게 더 편안한 경험을 들려줄 수 있게 되겠지. 내 이야기를 더 잘 들려줄 수 있게 되겠지. 가만히 생각하게 되는 오후다.


오늘 밤엔 어떤 글을 써볼까. 해가 선연한 낮에도 내 모든 감각은 온통 문장과 함께 절뚝거리며 서툴게 움직인다. 왁자지껄한 전투를 치르는 내 직장, 카페에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장 시끄러운 곳에서 제일 조용한 서사를 기꺼이 그리며 기다린다. 마치 뜯지 않은 택배 박스를 상상하는 사람처럼.


쓰고 다듬고 누군가에게 문장을 보이는 일이 반가워서, 새삼 다행이라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오늘도 문장의 숨을 고르고 자세를 다정하게 고쳐 잡는 사람들의 오후가 기분 좋게 평안했으면. 또 이 별것 아닌 문장을 읽는 당신의 오늘이, 그 자체로 아무렇지 않게 기쁨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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