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으면 교집합이라도
평소에 자주 타고 다니는 경의선이지만 그날 오후의 풍경은 특히나 낯설었다.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신종 바이러스 탓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뭔가 다들 움츠러든 분위기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탁 트인 경치가 무색하게 흐르는 공기는 무거웠고 사방은 조용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가 나에게 더 잘 들렸을 것이다.
그 소리는 내 맞은편에 앉은 한 여성분이 내고 있었다. 그분 역시 얼굴에 하얀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거기다 머리에 야구 모자까지 푹 눌러쓴 상태라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어떤 소리를 말없이 계속 듣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 와중에도 행여나 주변 사람들이 시끄러울까 봐 숨죽이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그 울음을 단번에 알아듣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 울음은 단순히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가슴속에서, 그것도 가슴속 아주 깊은 어떤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진 그런 울음이었다. 나도 울었던 그 울음. 내 속에서부터 나온 소리인데 내가 듣고도 놀랐던 그것. 처음 들어 본 톤의 그 소리. 그분 역시 그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가슴 왼쪽 아래 어딘가가 쿡쿡 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바로 두 눈에 눈물도 솟아올랐다. 그 모든 것들이 무슨 무조건반사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분은 스마트폰을 잡고 위로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리더니 자기의 무릎 쪽을 바라보며 잠시 더 흐느꼈다. 그러다 곧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말을 이어 나갔는데 워낙 조용조용 말을 한 것이라 내 귀에는 중간중간이 끊겨 이렇게 들렸다.
'아빠……, 병원……, 전화……, 심정지……, 사람 많고 정신없으니까……, 엄마는 일단 있어.'
그 소리를 다 들은 이후 나는 그분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눈에 고인 눈물의 양이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곧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내 몸의 즉각적인 반응에 나 역시도 당황했다. 행여나 모인 눈물이 눈 밖으로 떨어질까 봐 몸을 움찔거렸다. 그렇게 애를 써서 간신히 눈물을 삼킨 후 그분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당장 눈앞에 있는 장면이 복사되듯 그대로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그 장면 속 나는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분에게 다가가더니 꼭 쓰고 있던 마스크의 한쪽을 벗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괜찮으세요? 힘드시면 그냥 크게 우셔도 괜찮아요. 여기 있는 분들은 다 이해해 주실 거예요.”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그분은 어느새 어느 역에서 내리고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은 대부분 왜 그럴까. 왜 대부분 자신이 겪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까. 나도 내 가족의 죽음을 겪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한 슬픔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가까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겪으면 함께 슬퍼해 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냥 입에서 나온 울음과도 같았다. 깊지 못했고 길지도 않았다.
물론 매번, 매 상황마다 상대와 그렇게 똑같이 느껴 버리면 너무 많이 괴롭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내 생각과 내 판단이 늘 당연한 것이란 그런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이해가 안 된다면 적어도 나는 어떤 것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인정해도 서로 그렇게 미워할 일도 싸울 일도 많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지하철 안에서 처음 본, 더구나 앞으로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을 계속 보고 함께 슬퍼한 것은 그 순간 그 사람의 인생과 내 인생의 교집합을 순식간에 알아봤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그 외의 자세한 상황과 사정들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어차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는 서로에게서 그러한 교집합이라도 한번 찾아보자. 그렇게 노력이라도 해 보자. 우리는 각자가 하나하나 굉장히 특별한 존재인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또 이 거대한 세상에서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있고 순식간에 일어나는 대자연의 변화와 순리에 하루아침에 맥없이 흔들리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과연 그 안에서 누가 더 아래에 있고 누가 더 위에 있을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막아설 수 있을까. 모두가 힘든 그런 상황이라면 서로의 겹치는 경험들을 살펴가며 그렇게 서로를 보듬어 보면 어떨까. 그런 방식이란 알고 보면 누군가를 위한 일방적인 나의 희생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들은 결국 다 내가 계속 살아가기 위한, 앞으로의 나의 삶을 위한 시도 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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