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 Feb 02. 2020

인생의 교집합

모르겠으면 교집합이라도

  평소에 자주 타고 다니는 경의선이지만 그날 오후의 풍경은 특히나 낯설었다.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신종 바이러스 탓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뭔가 다들 움츠러든 분위기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탁 트인 경치가 무색하게 흐르는 공기는 무거웠고 사방은 조용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가 나에게 더 잘 들렸을 것이다.


  그 소리는 내 맞은편에 앉은 한 여성분이 내고 있었다. 그분 역시 얼굴에 하얀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거기다 머리에 야구 모자까지 푹 눌러쓴 상태라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어떤 소리를 말없이 계속 듣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 와중에도 행여나 주변 사람들이 시끄러울까 봐 숨죽이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그 울음을 단번에 알아듣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 울음은 단순히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가슴속에서, 그것도 가슴속 아주 깊은 어떤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진 그런 울음이었다. 나도 울었던 그 울음. 내 속에서부터 나온 소리인데 내가 듣고도 놀랐던 그것. 처음 들어 본 톤의 그 소리. 그분 역시 그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가슴 왼쪽 아래 어딘가가 쿡쿡 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바로 두 눈에 눈물도 솟아올랐다. 그 모든 것들이 무슨 무조건반사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분은 스마트폰을 잡고 위로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리더니 자기의 무릎 쪽을 바라보며 잠시 더 흐느꼈다. 그러다 곧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말을 이어 나갔는데 워낙 조용조용 말을 한 것이라 내 귀에는 중간중간이 끊겨 이렇게 들렸다. 

  '아빠……, 병원……, 전화……, 심정지……, 사람 많고 정신없으니까……, 엄마는 일단 있어.'

  그 소리를 다 들은 이후 나는 그분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눈에 고인 눈물의 양이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곧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내 몸의 즉각적인 반응에 나 역시도 당황했다. 행여나 모인 눈물이 눈 밖으로 떨어질까 봐 몸을 움찔거렸다. 그렇게 애를 써서 간신히 눈물을 삼킨 후 그분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당장 눈앞에 있는 장면이 복사되듯 그대로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그 장면 속 나는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분에게 다가가더니 꼭 쓰고 있던 마스크의 한쪽을 벗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괜찮으세요? 힘드시면 그냥 크게 우셔도 괜찮아요. 여기 있는 분들은 다 이해해 주실 거예요.”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그분은 어느새 어느 역에서 내리고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은 대부분 왜 그럴까. 왜 대부분 자신이 겪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까. 나도 내 가족의 죽음을 겪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한 슬픔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가까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겪으면 함께 슬퍼해 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냥 입에서 나온 울음과도 같았다. 깊지 못했고 길지도 않았다.

  물론 매번, 매 상황마다 상대와 그렇게 똑같이 느껴 버리면 너무 많이 괴롭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내 생각과 내 판단이 늘 당연한 것이란 그런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이해가 안 된다면 적어도 나는 어떤 것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인정해도 서로 그렇게 미워할 일도 싸울 일도 많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지하철 안에서 처음 본, 더구나 앞으로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을 계속 보고 함께 슬퍼한 것은 그 순간 그 사람의 인생과 내 인생의 교집합을 순식간에 알아봤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그 외의 자세한 상황과 사정들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어차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는 서로에게서 그러한 교집합이라도 한번 찾아보자. 그렇게 노력이라도 해 보자. 우리는 각자가 하나하나 굉장히 특별한 존재인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또 이 거대한 세상에서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있고 순식간에 일어나는 대자연의 변화와 순리에 하루아침에 맥없이 흔들리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과연 그 안에서 누가 더 아래에 있고 누가 더 위에 있을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막아설 수 있을까. 모두가 힘든 그런 상황이라면 서로의 겹치는 경험들을 살펴가며 그렇게 서로를 보듬어 보면 어떨까. 그런 방식이란 알고 보면 누군가를 위한 일방적인 나의 희생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들은 결국 다 내가 계속 살아가기 위한, 앞으로의 나의 삶을 위한 시도 중 하나인 것이다. 

결국 다 빛을 내기 위한 도구라는 점은 같다.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제가 궁금해해도 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