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저도 같이 갈게요
삶이란 것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나는 인간이 인간 위에 없다고 보았다. 부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은 찰나의 운인가 싶다.
한국이 미쳐있는 의사란 직업은 본디 아픔의 원인제거를 하는 직업인데 지금의 상태는 현실에 급급하다. (환자와 의사에 대한 복지 미비)노동대비 산출이 안나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투자를 해야 사고가 나지 않을까? 의사? 수 천조를 쏟아부어도 그 직업 안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끝까지 현장을 지킨 이들을 나는 진정한 의인이라 본다. 각각을 개인 사업자로 본다면 생의 숭고함을 이끄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무색하게 할 것이다. 의사는 대부분 대를 잇곤 한다. 모르겠다. 왜 그리도 의대를 고집하는 지. 대나무 자란 곳에는 또 다시 대나무가 자란다.
요리를 해 본 나로써는 칼을 쓰는 일이 두렵다. 비슷할 지는 모르나 칼로 나는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했고, 시간과 뜸을 들여 나의 노력을 녹여냈다. 단 한 번의 불길은 맛을 다르게 한다. 똑같은 요리를 여러번 해도 처음의 그 맛과는 달라 사람들에게 대접을 할 때면 정말 많이 연습한 음식을 내어 놓는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싸이코패스나 남의 살을 도려내면서 웃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부하면서 다 걸러지니까. 그래서 믿고 나는 병원에 간다.
의료 공백을 머물러 있던 이들이 메웠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하고 머쓱하게 들어가면 그만일 일수도 있는 선후배 관계를 수 많은 생명이 지나쳐 가도록 만든 시간이 야속하다. 정부에 왜 그런지 물어봤어야 했다. 의대정원을 늘려도 졸업이 어려우면 그만이고, 시험이 어려워 경쟁률이 높아도 될 사람은 된다. 조금 여유롭게 정책을 봤어야 하지 않나 싶다. 지금에 와서 돌아간다면 이젠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의대생을 늘린다=투입되는 인원의 직업정신이 투철하다=능력이 좋다=성실하다 는 늘 비례하지 않는 관계로 의사들은 걱정했을 수 있다. 기껏 키워놔도 다른데로 도망가니까. 명맥을 잇기 위한 삶의 투쟁이지 않았나 싶다. 당장에 병원 인력이 줄어들어 실제로 치료받을 사람들이 제때 의료복지를 받지 못했다. 군인력이 투입되었고 일시적인 갈증은 해소되었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지역 보건소의 이용 빈도수, 그리고 지역 병원의 개인별 이용 빈도수의 교집합을 찾으면 빈곤률이 나오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경제학자가 마트에서 모니터링하며 이용객들의 빈도수를 찾아가면서 물건의 자리배치를 하기도 한다. 환자의 영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 통계를 내는 경제학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까? 아… 대학원을 가야하나…어떤 의사의 사고 통계표를 본 적이 있다. 그를 돕고 싶다. 조금 더 군집을 늘리면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나오지 않을까?
삶의 쾌적함은 나에겐 거의 없었다. 나는 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 한 분이 약을 타오면 다른 할머니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어디선가는 빈곤에 앓고 있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가 말한 병원이 건물을 세울 때 병원 사람들은 밤새 환자의 옆자리를 지켰다.
아프지 말자, 누군가 그랬는데, 아프고 나니 사람들이 다 환우로 보인다. 나는 그래서 그들의 품에 뛰어들기로 했다. 죽을 때 까지 나는 그들의 곁에 있기로 다짐했다.
내가 겪은 사회복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가족치료가 아니라 사회치료가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야 그것이 보인다. 이거 말하면 밤 새야 할지도 몰라서 이만 잡소리를 줄인다..
네가 뭘 아냐고 한다면
나는 여기서 제언을 마친다
아무튼 곧 가리다
예쁘게 봐주세요
저는 천재가 아닌걸요, 윳흥~ 기다려 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