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건 때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기엔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많고, 그렇다고 평범함을 넘어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말하기에는 내 모습이 너무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는 그저 흘러간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이.
젊었을 때의 나는 다르다고 믿었다. 그땐 열정이 있었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나를 찾을 수밖에 없는, 나만의 색을 가진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 열정은 날 자유롭게도, 때로는 교만하게도 만들었다. 밤새워 찍고 작업했던 사진들, 내 목소리로 쓴 글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 놓겠다는 야망까지. 젊음은 그 자체로 불타올랐고, 나 역시 그 불길 속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런 열정은 점점 현실 앞에서 힘을 잃었다. 꿈은 현실과의 싸움에서 밀리기 쉬운 법이다.
30대 중반을 지나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 세상이 나를 찾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지켜내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었다. 젊을 때의 나에게는 이것이 패배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모습이 싫지 않다. 하루하루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도 내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작은 변화들이 나를 지탱해 준다.
몇 해 전, 오랜 연애가 끝났을 때를 떠올린다. 그 관계는 내게 있어 하나의 세계였다. 함께했던 시간, 공유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했던 내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 나는 내가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잃는다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관계를 잃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느냐”라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게 나름의 방식이 되었다”라고. 특별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감정의 큰 굴곡이 없어도, 지금의 나는 그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젊은 날의 열정은 이제 방향을 잃었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날 불태우지는 않지만, 잔불처럼 나를 비춘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그런 잔불을 간직하며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커다란 변화나 대단한 성취가 아니더라도, 그 잔불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기들이 내 하루를 채운다.
나는 오늘도 그저 하루를 산다.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지만, 그것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변함없어 보이는 내 모습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작고 미세한 변화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평범함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 어쩌면 내가 지닌 가장 큰 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