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잠시 멈춤.

by someformoflove


“저녁에는 의자와 침대를 사러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몸이 노곤할 때는 어떤 의자나 침대도 편안하게 느껴져서, 좋은 물건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가만 보면, 사람도 그렇다. 힘들 때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보다 그 순간 나를 위로해 주는 온기만 크게 느껴진다. 그렇게 손에 잡은 위로는 때로는 오래 못 가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나를 덮고 있던 피로와 함께 흔적만 남긴다.


이건 지금 내가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두 번의 깊은 연애를 끝내고 난 뒤의 나는, 마치 전쟁이 끝난 땅처럼 새로운 자아를 정립해야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때로는 스스로를 덮어두고,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꺾어야 했다. 그것이 사랑의 일부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사랑들이 끝난 후에야,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조금씩 되찾아야 했다.


마지막 연애가 끝난 후로 1년 넘게, 나는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다녔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섰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하루하루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명확해졌다. 사랑 속에서 희미해졌던 나의 테두리가 선명해지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상대방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사랑은 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란 게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른다. 1년쯤 지난 지금,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 희미한 사랑의 감정이 나를 불러내는 걸 느낀다. 마치 손을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 같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나는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다. 사랑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또 안다. 성장을 위한 사랑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시작한 사랑은, 오히려 나를 침식시킬 수도 있다. 사랑을 하는 동안 나는 상대에게 기대고, 상대도 나에게 기대기를 원한다.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건 이해하지만, 내가 나를 버리면서까지 그 기대를 채우는 건 결코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요즘의 나는 너무 지쳐 있다. 그래서 사랑을 떠올리는 날이 잦아졌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문득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긴 하루 끝에 나를 위로해 줄 목소리가 간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처음에 이야기한 말이 떠오른다. 몸이 지쳤을 때 의자와 침대를 선택하면, 그 선택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듯이, 내가 지금 사랑을 시작하면 그 사랑의 본질을 놓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내가 지금 연애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그 사랑은 내가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찾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지금의 나를 희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그 피곤함이 가져다주는 안도감에 휩쓸려 다시 나를 놓아버리는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사랑은 잠시 멈추기로 했다. 아직은 내가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세울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일은 모른다. 좋은 사랑은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멈추기로 결심한 바로 그 순간, 문득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나타나, 그 모든 다짐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다.


지금의 나는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지친 상태로 손을 내밀기보다는, 내가 스스로의 중심을 잡은 후에야 사랑을 선택하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잠시 멈추고, 나라는 사람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말 나를 위한 사랑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더 이상 노곤함에 기대는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서 그 사랑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잠시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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