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정사진이 나보다 꽃을 더 받을 것 같다.’
인터넷을 보다가 스치듯 머릿속에 남은 댓글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너희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날이 오겠지.
나를 기억하던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고, 사진 앞에 꽃을 놓는 그날이.
살아오면서 줄곧 받는 것에 서툴렀다. 누군가 내게 마음을 쓰면 고맙다기보다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뭔가를 받으면 그만큼 되돌려줘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가끔은 받을 때조차 어색하고, 심지어 불쾌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왜 이런 걸 줘?” 같은 말을 하면서 진심이 아닌 반응으로 선의를 밀어낸 적도 있었다.
사실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다. 그게 전부다. 받는다는 건 내게 여전히 어렵다. 왜냐하면, 그 호의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그만큼 돌려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혹은 돌려주고 나서도 부족하다면? 그런 걱정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결국엔 받는 일조차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주는 것을 싫어한 건 아니다. 나는 누군가가 내 작은 마음에 웃어주고 고마워할 때가 좋았다. 다만, 주고받는 관계라는 게 늘 쉽지만은 않았다. 줄 때마다 받아야 하고, 받으면 또 줘야 한다는 그 반복이 점점 피로하게 다가왔다. 어떤 마음은 그렇게 쌓이면서 그저 피곤한 의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관계에서 조금씩 물러서게 됐다. 더 많이 주지도, 더 많이 받지도 않는 쪽을 택했다.
그게 내겐 나름의 균형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뒤로 물러선 만큼, 너희는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을 닫고 있었기에, 진심을 전하지 못했기에, 혹은 내 서툰 태도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너희에게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얼마나 외롭게 느껴졌는지 나는 그때 몰랐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글을 쓰며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떠나는 날, 내가 남긴 흔적이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내가 받은 꽃들은 그저 나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만 남을까, 아니면 그 속에 상처도 섞여 있을까?
그런데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받는 꽃들만큼은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니, 그 순간만큼은 마음 편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묘한 위로가 된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받지도, 주지도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며 너희와 계속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정말 그날이 오면, 내 사진 속 웃는 얼굴을 보며 잠시라도 나를 가볍게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내게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다면 그건 흩어져버리고, 나와 나눴던 대화나 함께 웃었던 순간들이 더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변하지 못할 것이다. 받는 것이 서툴고, 주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며 어딘가 조금씩 모자란 상태로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전부 보여줄 수는 없더라도, 이렇게 글로나마 한 번쯤 마음을 꺼내놓고 싶었다.
그리고 이건 그저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너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너희를 걱정하고, 동시에 너희를 통해 위안을 받으며. 하지만 가끔씩은 나중에 다가올 그날을 생각하곤 한다. 그때도 너희가 행복하기를,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더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너희 삶에서 어떤 무게도 남기지 않고, 대신 가벼운 미소로만 남기를 바란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