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엔 네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곳은 내가 머무르기엔 차가운 곳일 테고, 네가 오기엔 너무 멀고 무의미한 곳일 테니까. 내 인생 마지막 날마저도 너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너를 다시 떠올리는 건 이기적인 행동일지 몰라.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여전히 너를 기억해. 내가 나를 미워하듯이, 내 사랑마저 미워하듯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고, 내가 너를 떠나보낸 순간마저도 잊을 수 없어.
그때 너는 평소처럼 담담했지. “그래, 이해해.” 네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이었어. 이해한다고 했지만, 사실 네가 나를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란 걸 나는 잘 알아. 너는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품고 떠나갔을 거야. 내가 무너진 곳에서 너도 무너졌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나는 너를 사랑했어. 정말로.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만 믿고 내 욕심과 기대를 사랑이라 착각했어.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이라 생각했던 네가 점점 나로 인해 메말라 가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척했어. 네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버리는 모습이, 너의 배려와 희생이 마치 사랑의 증명이라도 되는 듯 착각했지.
기억나니? 우리가 다투고 며칠간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날들. 내가 술기운에 전화를 걸었을 때, 네 목소리는 늘 평온했어. “괜찮아?” 네가 묻는 질문은 나를 걱정해서였겠지. 하지만 나는 그 배려를 너의 의무처럼 받아들였어. 그날 밤 내가 취한 몸으로 짜증 섞인 한 마디를 했던 기억도 나. “너는 왜 항상 그렇게 덤덤해?” 사랑을 갈구하는 내 외로움을 네가 채워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질문은 얼마나 어리석은 말이었을까. 네가 내 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주었는지, 얼마나 많은 무게를 혼자 견디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어.
네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마주했어. 너는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나를 떠났다고 했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난다는 것이 내겐 배신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네가 했던 말이 얼마나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깨달았어. 너는 내 곁에 남아 있는 것으로 오히려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던 거야.
네가 떠난 후, 내 방은 늘 조용했고, 창밖의 풍경은 변함없이 똑같았어. 하지만 내 안의 시간은 그날로 멈춰버렸어. 너를 잃고, 나는 나조차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어. 나는 내가 가장 연약했을 때 너에게 얼마나 큰 의지와 위안을 받았는지 뒤늦게 깨달았어. 그런데 정작 네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도.
이따금 너를 찾고 싶을 때가 있어. 너와 함께 갔던 카페, 함께 걸었던 길, 함께 웃었던 자리. 그곳들을 스쳐갈 때면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네가 마지막으로 내게 미소 지어주던 순간이 마치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어. 하지만 나는 알아. 너는 이미 너만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헤어진 연인에게서 연락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지. 그래서 네게 다시 손 내미는 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내 부고조차도 네가 알지 못하도록, 내가 남긴 흔적마저도 너의 삶에 아무런 요동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내가 없는 곳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거니까.
만약 네가 아직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이 슬픔이 아닌 작은 행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그저 우리의 좋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정도로만 기억되었으면 해. 나의 죽음이 너의 삶에 그 어떤 무게도 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네가 지금의 평온을 지키며, 네 삶에서 나를 아예 잊어도 괜찮아.
사랑은 때로 상처로 남지만, 그 상처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아문다고들 하지. 네가 나를 떠나고 나서야, 나는 사랑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어. 사랑은 내가 받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네가 내게 보여준 그것이었다는 걸.
너는 이제 너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겠지. 내가 네게 더는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 네 삶에서 내가 남긴 흔적이 한 줌의 미소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를 잊고, 네가 진정 행복하길 바랄게.
그럼 안녕, 나의 사랑. 내 장례식엔 오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저, 너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조용히 눈을 감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