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함의 기시감

by someformoflove

그녀와 나는 이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마치 오래된 기시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나와 그녀 사이에 놓인 불가항력의 벽은 단단하고 분명했지만, 그 벽 너머로 새어 나오는 빛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벽이 없었다면 서로를 그렇게까지 갈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금지된 것이 주는 아득한 아름다움, 그 매혹을 서로가 부정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애써 피했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섰고,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선을 긋는 척했다. 말끝을 삼키고, 눈길을 돌리고, 관계라는 단어의 무게를 의식하며 애써 조용히 흘러가고자 했다. 그러나 감정은 물처럼 틈새를 찾아 흘러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흔적은 지워낼 수 없었다.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찰나적이었다. 짧고 단편적이고, 그래서 더욱 뜨거웠다. 짧은 시선, 짧은 숨소리, 짧은 손끝의 떨림. 그 순간들이 내게는 끝없이 반복될 서사의 한 장면처럼 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그 순간들은 늘 덧없음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그 밤도 그랬다.

별빛이 은은하게 내려앉은 밤이었다. 그녀와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추고, 대신 서로의 눈빛에 침묵을 얹었다. 공기는 차가웠고, 하늘은 깊었다. 우리가 함께 서 있던 그 자리는 더없이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무대 위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그녀의 윤곽을 뚜렷하게 밝혀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너무나 선명했고, 동시에 너무나 멀었다.


손끝이 스쳤다.

그 감촉은 짧고도 명확했다. 부드럽고 따스하면서도, 이상할 만큼 덧없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내 안에 깊숙이 새겨졌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가는 감정이었다. 마치 시간이 그 순간만을 붙잡고 도망치려는 듯했다. 나는 눈을 감아보았다. 그녀의 온기가 마치 영원히 남을 것 같으면서도, 이미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은 너무 찬란했다. 찬란해서, 너무 고요했다. 찬란해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모든 시간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선 듯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찬란한 순간이 우리를 부서뜨릴 것이라는 걸. 그 빛이 너무 강렬해서, 그 안에 오래 머무를수록 우리 자신을 갉아먹게 될 거라는 걸.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외면했다. 아니, 외면이라기보단 초월하고 싶었다. 이 순간이 무너져도 좋으니, 이 순간만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길 바랐다. 그녀의 눈빛 속에서 나를 보고, 나의 고요 속에서 그녀를 느끼는, 그런 이기적이고 허망한 소망이었다.


별빛이 스러지고,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 우리는 말없이 그 밤을 지나쳤다. 그녀와 내가 바라보던 같은 풍경 속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이 지나간 뒤, 그녀의 그림자가 멀어졌다. 내가 본 것은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눈 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찬란히 빛났는지, 얼마나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지.


그 밤의 모든 것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녀의 눈빛, 스치던 손끝, 우리의 고요.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내려앉았던 별빛의 잔상까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그저 찰나였다. 그러나 그 찰나는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고, 나는 여전히 그 찰나 속에서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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