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사랑

by someformoflove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어 둔 채로 잠들었더니 방 안 공기가 눅눅했다.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닫고는 커피를 내렸다. 빗소리는 여전히 창 밖에서 들려왔지만, 그건 이제 내게 아무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다만, 커피잔에 비친 얼굴을 보며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라고. 그 말이 들릴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게 불행을 감수할 정도의 감정이라면, 그건 너무 고된 일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끝에 웃었다. 그 미소는 마치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있잖아” 하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웃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내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이 옳다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이유 없는 관계였다. 만난 것도, 함께했던 시간도, 헤어진 것도 모두 이유가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사랑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참 어려워.”

나는 대꾸했다.

“왜 어려운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눈을 맞추며 말했다.

“설명하려고 하면 사랑 같지가 않거든.”


그녀의 말은 언제나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말한 그 모든 것들이 맞는 말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사랑처럼 느껴진다는 그 말.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의 마지막 날을 떠올렸다. 그날 우리는 다른 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걷는 속도는 느렸고, 말은 끊기지 않았지만 무언가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떠났다.


나는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수 없었다. 이유 없는 사랑에, 이유 있는 이별을 구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이쯤이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며 뒤돌아섰다. 내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사랑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나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랑이란 함께일 때도, 혼자일 때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구나. 내가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말했던 모든 문장들이 이상하게도 완벽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비가 멈췄다. 나는 커피잔을 비우고 창문을 다시 열었다. 젖은 공기가 스며들었지만, 이번엔 그 눅눅함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떤 이유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가도,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랑은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오래전에 이미 내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도 어쩌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유는 없다. 하지만 굳이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각자 다른 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 시간은 나에게 이유 없이 다가왔고, 이유 없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게 사랑의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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