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연애는 늘 도망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아니다 싶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똑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점점 나를 갉아먹었다.
누군가는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환경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싫었다. 마음이 깊으면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강했고, 그 안에서 나는 늘 작아졌다.
서로의 사정이 다르고, 서로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먼저 무너졌다.
차갑게 등을 돌리기보다는, 조용히 조금씩 거리를 두며 사라졌다.
그러고는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댔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우린 너무 달랐어.’
‘이해받고 싶지 않아.’
그 말들 속엔 내 진심이 섞여 있었지만, 결국은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버거울 줄 몰랐다.
한 사람의 감정만으로는 결코 유지되지 않는 관계라는 걸, 늦게서야 알았다.
그래서 도망쳤고, 또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지금, 이상하게도 도망치고 싶지 않다.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에 그런 마음이 들어왔다.
계속 같이 있고 싶다거나,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거나.
앞으로의 날들에 이 사람과 내가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함께 꾸린다는 건 막연히 그럴싸한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항상 나를 지켜야만 했고, 나를 지키려다 보니 결국 상대를 지키지 못했다.
내 감정 하나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만큼 쉽게 지치곤 했다.
그래서 연애라는 건 내게 감정을 쏟아붓는 일이자, 언젠가는 없어질 걸 알면서도 불태우는 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불을 지피기보다 온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
빨리 사랑받기보다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
다 주지 않아도 된다는 걸, 조금씩 나눠도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무언가가 크게 달라진 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이제는 나도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내가 왜 그동안 도망쳐 왔는지.
그게 비겁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나를 너무 몰랐던 거다.
내 마음이 견디지 못했던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돌보지 않은 채 무작정 상대에게만 내준 내가, 나를 버려온 거였다.
이 사람 앞에서는 이상하게, 나를 너무 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편하고, 편안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안정감.
그 감정이 꼭 사랑이라는 이름일 필요는 없겠지만,
지금 나는 그 마음을 오래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잘 살아보고 싶다.
도망치지 않고, 겁먹지도 않고.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관계.
그런 걸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어쩌면 나에게는 가장 조심스러운 고백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함께 걷고 싶다는 말이
지금은 훨씬 더 진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