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 서로의 부재를 견디는 법

by someformoflove


그날 이후, 둘은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 같은 회의실, 같은 엘리베이터 앞에서조차도.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엇갈렸다. 인위적인 회피가 아니라, 이미 감정이 서로를 알아서 피하는 느낌. 그건 편안함이 아니라, 피로한 무게였다. 서로를 떠올리는 데에 에너지가 드는 관계. 그리고 그 에너지를 매일 감당해야 하는 일상.

하린은 여전히 아침에 화장을 했고, 제시간에 출근했고, 정리된 말투로 메일을 보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한 정거장쯤 걸어 내려가는 버릇이 생겼고, 창가 자리에 앉으면 밖을 바라보는 시간만 늘었다. 그 모든 작은 습관 안에, 마음을 붙잡기 위한 노력이 묻어 있었다. 밤에는 연락이 오지 않는 전화기를 베개 옆에 두었다.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지만, 매일 확인했다. 그리고 항상, 대답 대신 침묵이 있었다.

준은 그 시간, 조용히 퇴근하고 있었다. 여전히 고양이 밥을 챙기고, 매일 셔츠를 다려 입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아주 사소한 순간들에서. 회의 중 누군가가 “괜찮아요?”라고 묻는 말, 복도 끝에서 들리는 구두 소리, 창밖을 보며 마시던 커피의 온도 같은 것들. 그는 하린을 잊으려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더 이상 기억을 늘리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었다. 기억은 계속되면 미련이 되고, 멈추지 않으면 후회가 되니까.

어떤 날은, 두 사람 모두 같은 시간에 퇴근을 했다. 다른 문으로 나가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지만, 어쩌면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끝내 마주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어쩌면 가장 확실한 작별의 방식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더 분명해지는, 그런 종류의 감정.

하린은 언젠가 친구에게 말했다. “가끔… 안녕이라는 말은, 끝에 있는 게 아니라 시작 전에 쓰여야 했던 말인 것 같아.” 그 말은 스쳐 지나갔지만, 마음에는 오래 머물렀다. 준은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비슷한 말을 마음속에 갖고 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줄어드는 게, 진짜 이별이더라.”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사랑했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마음,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진심,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흘러가야만 했던 뜨거운 밤. 그리고 그 모든 걸 견뎌내는 건, 말보다 침묵이었다.

그날 이후, 둘은 서로의 부재를 감당하며 살아갔다. 누군가를 보내고도 보내지 못한 채, 그 공백 속에 말없이 머무르며. 아주 천천히, 조용히, 그렇게 잊혀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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