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속 빈자리가 익숙해지지 않아 괜히 네가 생각났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리도 무뎌지더라.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덜 생각나고, 덜 느껴지고...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도 요즘 문득문득 네가 떠오른다.
얼마 전이었어.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지. 바람이 제법 선선해져서 가을이구나 싶었어. 그날따라 괜히 네 생각이 났다. 익숙한 길인데,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그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네가 좋아하던 향이 풍겼어. 너도 알지? 그 은은한 바닐라 향 같은 거. 네가 그걸 뿌리고 다니면 괜히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야 그게 당연한 줄 알았지. 매일 볼 수 있고, 매일 너를 곁에 두는 게. 하지만 지금은 그 순간이 그리워지는 날도 있어.
참 이상해. 그때는 뭐든지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네가 떠오르는 순간이 짧고 흐릿하게 지나갈 뿐이야. 그러다 보면 문득 궁금해져. 너도 그럴까? 길을 걷다가, 혹은 갑자기 스치는 무언가에 나를 떠올리기도 할까?
언젠가 친구를 만나러 가던 날이었어.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고 들떠 있었지. 그런데 모임 장소로 가는 길목에 네가 자주 가던 카페가 보였어. 예전엔 그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아주 당연했었는데, 그날은 한참을 서성이다가 그저 멀리서만 쳐다보고 지나갔어. 커피 한 잔을 같이 마시던 그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느긋하게 흘렀던 건지. 이제는 그저 빨리 지나가버리는,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더라.
카페 옆을 지나가면서 네가 가장 좋아하던 메뉴가 뭐였더라, 잠시 생각해 보았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게 조금은 씁쓸했어. 우리 같이 보낸 시간이 꽤 길었는데도, 하나하나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 게. 그저 뭉뚱그려져서 기억의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도, 그때의 따뜻한 느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아.
가끔은, 네가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을 때가 있어. 뭔가 따뜻하고 편안했던 그 시간이 생각나면서 말이야. 참 좋았지, 그때. 그 순간들은 이젠 더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때의 우리는 참 행복했었던 것 같아. 지금도 그때처럼 가끔은 네가 내 곁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곤 해. 아주 짧은 순간, 몇 초가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말이야.
가끔은 네가 지금 어떤지 궁금해.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그렇게 지워져 갔지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도 그렇거든.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고,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고, 일과를 마치면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혼자서 책을 읽기도 해. 특별한 일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그 안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애쓰고 있어. 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네가 보고 싶을 때가 있어. 어떤 날은 말이야, TV를 보다가 네가 좋아하던 배우가 나올 때, 또는 네가 좋아하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그때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지곤 해. 나도 모르게 너의 번호를 다시 눌러볼까, 그런 생각도 들고 말이야. 물론 그러진 않아. 그냥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니까.
얼마 전에 친구와 술 한잔하면서,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어. 그러다 문득 너와의 이야기가 나왔어. 친구는 ”가끔 옛사람이 생각날 때가 있지 않느냐 “며 웃더라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 가끔 그럴 때가 있지 “ 했지. 우리 이야기가 그리운 건지, 아니면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건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결국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삶에서 흩어졌고, 지금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거겠지.
가끔은 네가 나처럼,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기도 할까? 우리 함께 걷던 그 길을 지나갈 때, 잠시라도 날 생각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