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니었던 건 아니야.
분명 사랑이었지,
내 숨결처럼 네 곁에 머물렀던 그 시간들.
그런데, 나는 그 사랑을 지킬 확신이 없었어.
확신이라는 바람에 흔들려
마치 어린 나뭇가지처럼 너를 휘어지게 했고,
결국 부러뜨리고 말았어.
너를 찢어버린 건 사랑이었지.
차가운 칼날처럼 날카로웠던 내 말들이
너의 마음을 조각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있었어.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을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피 냄새가 내 안에 남아 있었어.
사랑의 잔해들이 내 손끝에 묻어 있었으니까.
”우리 괜찮을까? “
너의 목소리는 그때, 바람결에 스치는 풀잎처럼 떨렸어.
나는 대답했지.
”괜찮을 거야. “
하지만 내 말은 흩어진 모래알 같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어.
너는 그걸 알았겠지.
우리가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걸,
그 순간 느꼈을 거야.
그리고 나는, 끝까지 외면했어.
우리는 그때 비처럼 쏟아졌지.
서로에게 퍼부었던 말들이
마치 빗줄기처럼 끝없이 떨어졌고,
둘 다 젖어버렸어.
나는 너를 붙잡으려 했지만,
젖은 손은 미끄러졌고,
결국 우리 사이엔 더 깊은 골이 생겼어.
시간이 흐른 뒤,
문득 길을 걷다 보니 네가 떠올랐어.
차가운 가을 공기 속에 스며든
너의 향기, 네가 좋아하던 그 은은한 향이
마치 내 코끝에 남아 있는 듯했어.
너는 어디에 있니?
그때의 너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향기를 풍기며 걷고 있을까?
내 마음은 바람에 쓸려간 낙엽처럼
점점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한편에는 무거운 돌멩이처럼 남아 있는 너.
그 돌멩이가 내 발끝을 찌를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너를 기억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은
마치 겨울 끝의 눈송이 같았어.
서로에게 닿기도 전에 녹아내렸고,
그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지.
나는 그때 그걸 놓아야 했는데,
마치 얼음처럼,
손끝이 시릴 때까지 붙잡고 있었어.
너는 살려고 나를 놓았고,
나는 그걸 모르고
다시 너를 붙잡으려 했지.
내 손끝에 남은 건
갈기갈기 찢긴 기억들뿐이었어.
지금도 가끔 생각해.
너는 어디서, 어떤 바람 속에 서 있을까?
나는 이제 너를 떠나보내려 해.
하지만 그 찬바람에 네 이름이 실려 올 때마다,
나는 다시 그리움 속에 빠져드는 걸 알면서도
또 눈을 감고 걸어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