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끝자락에 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어리다고 느껴지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야. 지나온 시간들, 특히 그 시절의 너와 나를 떠올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밀려온다. 그때는 모든 게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너는 언제나 어른스러웠다. 말투도, 행동도, 감정 표현마저도. 나는 그저 네 뒤를 쫓는 아이 같았다. 우리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로를 누구보다 가까이 두었지만, 가까이 있을수록 더 깊은 상처만 주고받았다. 그러고도 헤어지지 못했던 그 시절이 이젠 아이들 장난 같아 보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투고, 울고, 다시 돌아오고. 반복되는 그 무의미한 싸움 속에서 서로가 점점 지쳐갔던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넌 왜 그렇게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네가 화를 내며 외치던 말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나도 모르겠어.”
대답 대신 내뱉었던 그 한마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찌 너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으려 했지만, 어설펐다. 그 어설픔이 때로는 아픔이 되었고, 결국에는 상처로 남았다. 우리가 왜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도 곁에 남아 있었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마치 버려진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나 네가 날 다시 안아주길 기다렸고, 너는 버려져도 주인을 찾는 강아지처럼 계속 나를 떠올렸다. 그런 사랑이었다. 서로를 외롭게 만들면서도, 서로가 없는 삶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랑을 받는 법을 몰랐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상처받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너도 나도 몰랐다. 우린 서로의 허전한 곳을 채우기엔 너무 미숙했고, 그 결과는 당연히 아픔뿐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순수함, 그 시절의 우리에겐 분명 사랑이었다.
겨울이었다. 바람이 차가웠던 어느 날, 우리 둘은 길을 걷고 있었다. 손을 잡고 있었지만, 서로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우리 사이에선 말 한마디 없었다. 그런 침묵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있었다. 그날 나는 문득 물었다.
“너는 왜 나랑 있는 거야?”
네가 대답을 하려다 멈췄다. 그리고 짧게 웃었다.
“글쎄, 그냥… 네가 거기 있으니까.”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무 이유 없이 함께 있다는 그 말이 위로가 되는 동시에, 씁쓸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던 그때의 우리는, 그저 서로의 곁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을까?
돌아보면, 그때의 우리는 그저 아이들 같았다. 어른인 척, 사랑을 안다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서로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던 아이들. 서툰 사랑, 서툰 말들, 그리고 서툴게 주고받던 마음들. 그때의 순수한 사랑이 그립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사랑한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살아갔던 그 시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란 걸 알기에, 더욱 아련하다. 그때의 우리는 결국 상처를 주고받으며 끝이 났지만, 그 시절의 사랑은, 생에 단 한 번뿐인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