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
그날 내가 너에게 불러주었던 노래의 첫 소절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이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너무나 미숙했고, 책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모든 것이 버겁고 두려웠다. 그래서 널 붙잡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가 서로만 있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우리 둘만의 사랑을 할 수 있으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알면서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도망칠 수 없는 것들이었고, 어디로 가도 내 불안과 두려움은 따라올 거라는 걸. 나는 그것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너랑 같이 가면, 다 괜찮아질 거야. 그치?”
그때 내 목소리는 애절했고, 너는 나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그토록 무겁고 아픈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걸, 나는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계속 도망치고 싶었던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 안의 불안과 혼란을 너에게 내보이기 두려웠고, 그것이 널 아프게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차라리 널 데리고 떠나버리면, 그런 불안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랑 같이 도망치지 않으면… 나 혼자 부서져버릴 것 같아.”
이 말이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천천히 무너져가고 있었고, 내 곁에 있는 너조차도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나는 더 큰 상처를 주기 전에 끝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너는 끝까지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와 함께라면, 난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근데, 결국 난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너를 끌어들이고 있었던 거야.”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있다. 너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 뒤에는 나를 구하고 싶다는 절박함도 있었던 거다. 나를 아프게 하는 현실에서 도망쳐 너와 함께라면, 모든 걸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어린 마음이 말이다.
결국, 그 도망치고 싶다는 내 바람은 우리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지킬 방법을 몰랐고, 성숙하지 못한 나는 결국 너에게서 멀어졌다. 도망가자는 말은, 어쩌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내뱉은 마지막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네가 내게 말했던 한마디가 기억난다.
“우리가 도망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더 부서질지도 몰라.”
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함께 어디로 도망치든,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네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 자리에서 더 단단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