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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formoflove Oct 18. 2024

사진

“모하고 있어?”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별생각 없이 전활 걸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우리는 최근 자주 다퉜고, 예전처럼 가까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리 여행 갔을 때 사진 보고 있었어!”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기억나? 그때 진짜 재미있었잖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행 때의 순간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묘한 기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추억이 즐겁게 다가왔을 텐데, 지금은 무언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어제도 봤는데 또 봐? 사진 보면 뭐가 그렇게 재밌어?”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좋잖아.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사진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다시 생각나서.”


그 말을 듣고도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다. 현재가 만족스러우면 그걸로 됐다 여겼으니까.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그걸 자꾸 들춰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언제나 지금이 중요했고, 지금 곁에 있는 서로만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늘 사진을 꺼내 볼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방식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말없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그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를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이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다툼 속에서도, 행복했던 순간들을 붙잡고 버티려 했던 것이다. 싸움이 길어지고 힘겨워질수록, 누군가는 추억 속에서 다시 우리를 찾아냈다.


헤어짐은 점점 현실이 되었고, 결국 멀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붙잡지 않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의 선택이 올바르다고 여겼다. 나름대로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무언가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흘러, 홀로 남은 공간에서 문득 앨범을 꺼내 들었다. 손끝에 닿은 사진 한 장. 거기엔 웃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 왜 자꾸 사진을 들여다봤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저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싸움 후에도, 다투고 난 뒤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이 담고 있던 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형태였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 속에서도, 마음은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때 더 알았더라면…”


한없이 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왜 자꾸 사진을 들여다봤는지, 왜 그 기억을 붙잡으려 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와서야 그 의미를 깨닫고, 이곳에서 홀로 사진을 바라본다. 그때 내가 느끼지 못했던 사랑의 깊이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이 담긴 사진이 마지막까지 손에 남았다. 그때의 대화가 다시 떠오른다.


“왜 또 사진을 봐?”

그 질문이 농담처럼 흘러갔지만, 지금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말없이 사진을 보며, 사랑을 기억하고 있었던 마음을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함께했던 순간들을, 또 그 순간들을 지켜내려던 노력을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사진 속, 그날의 미소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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