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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formoflove Oct 18. 2024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겨울이었다.

거리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서늘하게 다가온 건 눈앞의 광경이었다. 나와 자주 걷던 길, 함께했던 카페, 거기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너를 보았다.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발밑의 눈은 차갑고, 하늘에선 무언가 내려오고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람이 더 차가워졌고,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다. 분노나 슬픔, 혼란 모두가 뒤섞여 있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우리 사이에 놓인 시간이 멀어질수록, 연락만으로 이어가던 관계는 서서히 희미해졌고, 그 희미함 속에서 나 혼자만 남아있던 듯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더 이상 내가 너를 붙잡을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도, 오히려 더 깊숙이 숨어버렸다. 마치 그 장면을 봤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려는 듯, 발걸음을 돌려야 할 순간에 움직이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내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숨죽여 서 있었다. 너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랑 웃고 있었다.


그저, 그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마치 내 발이 땅에 박힌 듯 한참을 서 있다가, 차갑게 얼어붙은 길 위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발소리가 눈 위에서 사각거렸고, 그 소리마저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겨울의 공기가 폐를 찌르는 것처럼 날카롭게 들어왔다. 손끝도 얼었고, 내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서늘하고, 무겁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이 떨리던지, 추위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숫자를 눌러 전화를 걸었을 때 그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벨소리가 몇 번 울리고 나서야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떨림이 느껴졌다. 긴장한 듯, 나를 진정시키려는 그 억양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 순간, 우리는 같은 추위 속에 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추위는 너의 떨리는 목소리보다 더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어디야?”

그 짧은 질문이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너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는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네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나도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랐다.


“나… 그냥 있어. 너는?”

너는 차분하려 했지만, 이미 그 안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감정들이 전해져 왔다. 나도, 너도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둘 다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네가 나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몇 마디를 더 나눴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이미 정리된 듯했다. 너는 나를 붙잡지 않았고, 나 역시 너를 붙잡을 방법을 몰랐다. 분하고 슬펐다. 분명 사랑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보였다. 이미 끝난 것처럼. 그러나 내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차갑고 얼어붙은 거리에서, 이별을 맞이했다. 너와 나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목소리 속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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