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고요한 무대 위, 현악앙상블 단원들과 함께 박자와 리듬을 맞춰가며 자신의 오른손에 잡은 활로 왼쪽 어깨에 기대어진 커다란 첼로를 부드럽게 연주하는 이가 있다.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음악에 대한 진지한 열정으로 빛나는 눈빛은 가장 부드럽고 따뜻하며 때로는 강렬하고 묵직하게 속삭이는 첼로의 음성을 들려주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첼로를 켜는 풍경 뒤에 한 어머니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세상에 태어난 지 겨우 2년 만에 지적 장애 판정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과 같은 날이 오리라고는 아무도 쉽게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가, 얼른 일어나 걸어보자...? 왜 그렇게 느리니... 남들은 돌잡이할 때부터 걷기 시작한다는데 넌 두 돌이 다 되도록 왜 걸을 생각을 안 하는 거니, 응? 우리 아가... 설마....?!”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두 돌 남짓한 아들이 남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한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병원에서 CT 촬영을 했다. 그냥 좀 다른 아이들보다 늦은 것뿐이기를 바라며...그러나 뜻밖의 결과는 큰 충격이었다. 뇌종양과 뇌수종 진단을 받은 아들은 두 번에 걸친 수술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지적 장애 2급 판정을 받고 말았다.
“오, 세상에...뇌종양이라니...지적 장애라니요....하느님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제가 무슨 죄를 그렇게나 지었나요?”
어머니는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믿지 않았으며, 단지 기도가 부족한 것뿐이므로 열심히 기도하면 곧 나아지리라고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아이의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하느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던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야.
가장 열렬하게 하느님을 믿는 나에게 주어진 이와 같은 시련은
틀림없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내게 주어진 것일 거야.
아들을 통해 신께서 당신의 존재를 보여주시고자,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자
계획한 일일 거야.
그래, 내가 충실한 일꾼이 되어야지!
간절한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내가 기필코 펼쳐 보이고야 말 거야!”
그때부터 어머니는 눈물과 슬픔의 넋두리를 거두고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는 동안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던 아이가 멜로디를 넣어 노래로 불러주면 신기하게도 반응을 보였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아이에게 음악을 듣게 했다.
꾸준히 이어진 음악 듣기는 피아노를 거쳐 운명적으로 첼로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한 끝에 대학에 입학하여 첼로를 전공하였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마침내 그는 전문 연주자로서 수많은 연주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묵직하고 단단한 첼로의 음성으로 세상에 들려주고 있다. 이와 같은 아들의 뒤에는 그림자보다 더 일심동체의 존재인 어머니가 있었다.
세상 모든 불가능 뒤에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능력은
어쩌면 하느님도 첨단과학도 아닌
바로 무한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