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2018.02.11시작
브런치를 시작한지 1년이 돼간다. 작가와 독자들이 글을 통해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브런치의 시스템을 우연히 보고 흥미를 느껴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리 자기 멋에 글을 쓰고 혼자 아껴두며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독자 없는 글쓰기는 사실 좀 시큰둥하게 마련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리라는 기대가 있기에 좀더 성의 있게, 열심히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준비없이 얼덜결에 시작한 뒤,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보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글 좀 쓴다 하는 1인이었으나, 나보다 훨씬 맛깔나고 진지하게 깊이 있고 소신 있게 좋은 글을 쓰는 ‘재야작가’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래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곧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그들의 싱싱하고 펄떡이는 글들에 비해 내 글은 너무나 평범하고 시들하고 재미없고 푸석하구나... 그리하여 나는 초기의 의욕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고, ‘무언가 써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감에 부질없이 쫓기기만 할 뿐이었다.
그럴 즈음,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통해 다시 한번 시작해보려 한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하지도 않고 달변가도 아니며 문장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래서 글쓰기가 제일 만만하면서도 막상 제일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끊임없이 무언가 쓰고자 하는 이유는 역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본능 때문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본다.
모든 관계는 소통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인간관계가 힘들까?_머리말 부분 발췌
세상에는 수많은 글과 말이 넘쳐난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말이 쏟아져 나오고 지면을 통해서만 글이 범람하는 것은 아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말 한마디를 잘못하거나 글을 잘 못 쓰는 바람에 구설에 휘말리는 경우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말이 많아지면 쓸모 있는 말 보다는 버려야 할 말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이제는 말조심, 입 조심을 넘어 차라리 침묵하는 법을 익혀야 할지도 모르겠다.
18세기 프랑스의 신부 디누아르도 자신의 책을 통해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말이 많아 문제가 되는 일은 21세기인 지금이나 과거나 마찬가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통’이란 그저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활한 소통에 반드시 필요한 것 또한 적당한 침묵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적당한 순간의 긍정적인 침묵은 수백 마디의 말보다 효과적인 소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침묵은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행위로 나아갈 때 효율적이다.
당신은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인가, 잘 들어주는 사람인가.
참된 소통을 원한다면 마음을 열고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데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진심으로 듣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이다.
2017년 가을, 유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