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뤼팽이 이야기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다.
오월 중순의 따스한 햇볕이 활짝 열린 2층 거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오 무렵의 나는 대강의 집안정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한숨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낑낑...낑...
언제부턴가 알 수 없으나 어렴풋한 강아지 울음소리가 간간이 바람을 타고 귓가에 들려왔다.
어느 집 강아지가 우는 걸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지는 신경을 곤두세워 창밖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잠잠해진다.
별일 아닌 듯...한참을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다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낑낑..낑..낑
그제서야 그 울음소리는 벌써부터 2,30분 간격으로 한 번씩 들려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점점 크게 간절하게 들려오는 듯한 그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울음소리에 이끌려 이리저리 살피다보니 뜻밖에도 빌라 앞마당에 세워진 옆집 자동차 바퀴 근처에 까만 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세상에~!
녀석은 목줄에 연결된 줄이 주차된 승용차의 한쪽 바퀴에 둘러감긴 채 끼여 오도가도 못 하고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나, 웬일이니?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니?
황급히 작고 까만 강아지의 줄을 풀어 안으며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인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집으로 데려온 나는 이 작고 귀여운 꼬마를 씻기고 아쉬운 대로 그릇에 우유를 따라주었다. 녀석은 낯도 가리지 않을뿐더러 당연한 듯 허겁지겁 그릇을 핥고는 나에게 파고들었다.
보기에,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주 어린 아기인 듯했다.
-야~ 정말 잘됐다. 우리가 키우자!
남편도 첫눈에 반가워하며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된 블랙 앤 실버 슈나우저 사내 녀석!
바로 이 아이가 우리에게 온 날은 2003년 5월 중순. 그로부터 우리는 이 작은 꼬마 슈나우저를 ‘뤼팽’이라 이름 짓고, 생일도 기억하기 쉽게 2003년 2월 3일로 정해주었다.
이 꼬마와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꼬마 슈나우저 뤼팽이는 우리에게 온 첫날부터 사랑스러웠고 착하고 멋졌다.
그리고 어느덧 15년째, 뤼팽이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의젓한 멋쟁이 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한 마리 개새끼가 어떻게 자식을 대신하고 아들이 될 수 있느냐고 코웃음을 치고 심지어는 늙어 병들기 전에 갖다버리라고 진심으로 충고를 하기도 한다.
물론 이제 나이 들어 수년전부터는 안구건조증과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으나 팔팔뛰는 청춘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뤼팽이는 우리 가족의 소중하고 중요한 구성원이다.
6년 전인가, 뤼팽이가 7살 즈음 남편과 나는 한달 반 일정의 긴 여행을 하게 되었었는데, 그때 우리는 그렇게나 긴 시간동안 뤼팽이와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고 걱정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사실 강아지를 기르는 일은 어린 아기를 키우는 일보다 더 손이 가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어린 아기는 시간이 가면 점점 자라서 사람구실이라도 하지만, 강아지는 아무리 오래 키운대도 늘 주인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일까, 강아지는 자신을 보살펴주는 주인에 대하여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준다. 그것은 나이가 들었다고 덜해지거나 아프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어릴때는 물론, 나이가 들어 사람 나이로 70대가 되었어도 강아지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며 보살펴주는 사람에 대하여 무한하고 열렬한 사랑을 아까지 않는다. 계산하지 않으며 꾀를 부리지도 않고 그저 그 자신의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람의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슬플 때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내가 기뻐할 때는 온몸으로 함께 기뻐해준다.
저 작은 존재의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에 감동하여 커다랗고 새까만 눈동자를 가끔 들여다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녀석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함께 내 눈을 깊이 응시한다. 그 눈 속에서 나는 그 아이의 진심을, 차마 말로는 못하지만 말보다 더 깊고 진심어린 눈빛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가끔은 이 녀석이 우리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강아지들의 수명이 보통 16-7년이라고 하지만, 15세가 된 우리 뤼팽이는 아직 충분히 달리기를 즐기고 매일 매일의 산책을 기다리고 즐기는 건강한 시니어이다. 그럼에도 예전보다는 하루 중 수면시간이 분명히 더 늘었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 때면 관절이 잘 안 펴지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길게 다리를 죽 뻗어 스트레칭을 하고서야 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그럴 때면 관절이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뤼팽이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만혼(晩婚)이었던 우리 부부에게 어느 날 문득, 세상에 하나뿐인 천사같은 꼬마 슈나우저를 보내주신 것이다. 세상에 돌보아야 할 존재가 강아지라고 안 될 이유는 없지 않겠나. 어느덧, 우리는 함께 늙어가며 서로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존재이다.
이제 나는 이 소중한 시니어 뤼팽이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하루하루 특별한 일없이 평화롭고 그런대로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으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좀더 많은 일을 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떠돌이가 되어 거리를 헤매다 불행한 생을 짧게 마감할 수도 있었을 이 작은 한마리 강아지를 구해 잘 보살피는 것도 어쩌면 그분의 뜻이 아니었을까...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이 소중한 인연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