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를 삼킨 지중해 도시
르아브르에서 니스행 TGV.
새벽 5시, 프랑스 남쪽으로 향한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 기차역 부근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출력해간 지도를 보고 찾아갔는데 초행길이었음에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 휴양지답게 공기는 뜨거웠고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가벼워보였다.
여행기간 중 묵었던 장소들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숙소.
다음날이 남편의 생일이었는데 본인이 특별히 좋은 장소를 골랐다며...
숙소에는 특별히 옥상쪽으로 출입문이 있어서 저렇게 나가서 태닝도 할 수 있었으며 아래층에는 야외 풀장이 있었다. 수영을 좋아하는 우리는 저 야외풀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람이 많이 않아서 물놀이가아닌 진정한 수영을 즐기기에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도착한 당일 저녁에 저녁거리 마련을 위해 슈퍼마켓에 갔다가 다툼을 시작하고 말았다. 한국과 음식이 다르니 식재료도 달라서 한국처럼 찌개같은 걸 해먹을 수도 없으니 그냥 간단한 걸 먹겠다고 했다가 성의가 없다느니 하는..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는 바람에 또다시 세상을 뒤집을 듯이 싸웠다....그 순간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남편은 내가 제대로 갖춰서 뭘 해먹기를 바라서 그랬다지만 나로서는 굳이 골고루 챙겨먹는 일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다음날에야 다시 어영부영 화해를 하고 제대로 생일도 되새기고 했지만 니스의 첫날은 참 피곤했음에 틀림없다.
보통 바닷가에 가면 비린내가 진동을 하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곳은 그런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신기했다. 그것은 여행중 어느 바다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바다는 근처에 가기도 전에 바람을 타고 비린내가 퍼져오는데 이 나라는 그렇지가 않더라는... 참 이상하다 했더니 친구는 '정말 깨끗한 바다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내 생각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정말일까. 정말일 것 같다, 그래서 비린내 진동하는 우리 바다가 자꾸 생각났다.
바람은 그리 불지 않았지만 파도가 은근히 있어서 물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한번씩 비명을 지르며 해변으로 떠밀려오곤 했다. 해변은 갯벌이 아닌 자갈밭이라 발이 아파서 맨발로는 걸어다니기도 쉽지 않다. 남편도 수영을 하겠다며 저 바다에 들어갔으나 어처구니없게도 결혼반지만 잃어버리고 돌아왔다. 지금도 남편의 결혼반지는 저 바닷속에 잠자고 있을텐데..어서 가서 찾아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이후로 남편은 가는 곳마다 기념이 될 새로운 반지를 찾아헤맸다. 결국 파리 노트르담 성당 근처의 상점에서 마음에 드는 기념반지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결혼반지를 대신할 수 있을까.
날이 뜨겁지 않고 흐려서 일광욕을 하기에는 별로 기분이 나지 않는 날씨였다. 그래도 바다에서는 벗어주는 것이 예의라는 듯 모두 하늘 향해 드러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국인 거리, 영국인 산책로 등으로 불리는 이곳, 니스 해변가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인데 마세나 미술관에서 해변쪽으로 가면 나온다. 영국인들이 우기를 피해 니스로 휴양을 왔다가 이곳의 길을 조성하는데 많은 돈을 기부해서 영국인 산책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는 지중해에 발을 담그고 천천히 해변 산책로를 걸으며 남프랑스의 낯선 햇빛과 공기와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우리나라의 해변이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아니 사람수보다 더많은 상업용 파라솔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해변에 무수히 꽂아둔 파라솔을 자릿세를 받고 휴양객들에게 빌려주는게 한국의 당연한 규칙이라면, 이곳 해변에는 자릿세용 파라솔은 커녕 잡상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인지 이곳이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 그런 것도 아니고....
사실 여행 내내 어딜 가나 그런 의문이 들었다. 몽생미셸에서도 에트르타 해변에서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그 어느 곳에도 우리나라에서라면 흔히 몰려들었을 온갖 잡상인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의아했다.
그래서 이곳 해변은 진정한 휴식이 가능한 곳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언제쯤 그런 평화와 진정한 휴식이 있는 휴가가 가능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