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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다1

_조직과 작업에 적응한다는 것

by somehow

이제사 고백하건대, 나는 1966년 12월 생이니 현재 56년 8개월여 시간동안 살아내고 있다.

이 나이를 보통 57세라고 말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만나이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어느새 남들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음을 자각한 시기를 의미하리라.




|그런 내가, 2018년 12월말 무렵부터 월급생활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생산직 근로자의 삶은 4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쌓여가는 시간만큼씩 나는 익숙해져 가고 있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 어렵고 힘든 법, 나는 지금 나이를 잊고 새로운 환경과 작업과 사람들에 적응하려 또다시 애쓰며 하루하루 적응해가고 있다.


새로 일하기 시작한 B제약에 대해 조금더 정보를 공개하자면,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그 어린이용 비타민 C를 생산하는 곳이다. 일을 하면서 더욱 다행스럽게 여기는 점은 몇가지가 있다.

어린이용 비타민이라는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러므로 환경면에서도 나쁘지 않다.

즉, 유해하지 않은 환경에 만족스럽다. 이 회사의 맞은편에는 스티커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그곳의 출입구 근처에는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이라는 주의경고문구가 큰글씨로 붙어 있다. 출퇴근길에 오가며 보니, 그곳은 예전에 취업을 위해 수도 없이 이력서를 날리던 때, 한 번쯤 지원했던 곳이기도 함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스티커라는, 왠지 중노동이 필요하지는 않겠다싶었고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는 짐작만으로.

그런데 이제와서 저 경고문구를 발견한 뒤 생각해 보니, 그곳에서 나의 이력서를 눈여겨보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스티커를 만드는 데는 접착기능을 위해 어떤 강력한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것같다. 그러니 스티커라는 최종 완성품은 한없이 가볍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제조환경은 작업자에게 결코 이롭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에 비해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하는 이곳은 그 어떤 특별한 유독성 물질이나 유해한 냄새는 없다. 물론, 비타민제제인 분말상태의 원료를 타정하여 알갱이 형태로 생산하다보니 포장단계에서도 어느정도 잔여 가루가 날리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정도이다.



||어린이용 비타민제를 생산 포장하는 B제약의 생산과정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비타민의 원료인 가루상태의 혼합제를 '타정실'이라는 생산시설에서 3명의 남자직원들이 50원짜리 동전 형태의 단단한 알갱이로 생산해낸다. 그것들은 '필러실'이라는 내포장시설에서 자동포장기계에 투입되고 자동기계를 통해 하나씩 낱개의 포장지에 쌓여 컨베이어벨트 위로 하루에 수만 개씩 쏟아져 나온다.

(필러: 잘은 모르겠으나, 영단어 fill의 채운다는 의미로 쓰는 듯. 필러:filler=개별포장지에 비타민알갱이를 채워넣는다는 의미로 명명된 것같다. 일반적으로 내포장실로사용하는 시설.)

그곳에도 3~4명의 주부생산직 사원들이 상주하며 포장 불량품을 선별한 뒤, 벌크상태로 임시 포장하여 종합포장실(외포장실)로 내보낸다.

종합포장실은, 필러실에 근무하는 3명 이외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포장생산 인원이 하루종일 출고가능 상태의 외포장 업무를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포장이 이루어지기에 종합포장실이라고 명명된다.

포장은 다양한 용량과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필러실에서 벌크상태로 이동되어온 비타민제를 가져다가 50개 혹은 500개 또는 25개씩 등 다양한 용량에 따라 각각 다른 포장용기가 사용된다. 같은 비타민제라도 다양한 형태로 포장을 달리하여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에 맞춰주는 것이다.

물론 이 대부분의 과정들 또한 자동화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전반적으로 자동 포장이 이루어지지만 불량검수, 라벨스티커 부착이나 포장용 대/소 박스 접기, 병 뚜껑 닫기, 포장완료상품들을 켜켜이쌓은 팔레트 옮기기 등의 단계에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동원된다. 아무리 자동포장이라도 작업의 시작과 마무리 단계에서는 작업자들의 수작업이 필수적이다.

일은 하루하루, 끝없이 쉼없이 이어진다. 물론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있다.

더팩토리_D에서의 할일없는 괴로움을 무수하게 겪어본 나로서는 매일매일 쉼없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른다.


날마다 수천만 개의 어린이용 비타민이 포장되어 창고에 쌓인다. 그것들은 내수 외에도, 베트남이라던가 그외 어디 어디 해외의 나라들로도 엄청나게 수출되어 나갈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일을 하며 우리는 종종 궁금해한다.

-이 많은 것들은 누가 다 먹지?

-아이들이 엄청나게 좋아한다나봐요.

-그래요? 정말 신기하고 놀랍네요....


입사 동기와 나, 신참은 일을 차례로 배우고 있다. 지나고 보니 아무 일이나 되는대로 시키는 게 아니고 가장 쉽고 단순한 일부터 그 다음 과정을 차례로 익히게 하며 그곳 나름의 체계를 익히도록 한다. 그들만의 시스템에 적응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신참들은 하루하루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 전반적인 관리는 과장의 역할이었다.

나보다 나이는 두어 살 어려도 그녀 역시 9년차의 베테랑이었으므로 일처리에 나름대로의 일관성과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입사 이래로, 일과는 늘 일정하고 꾸준하다.

매일 과장의 지시에 따라 포지션이 순환된다.

신참들은 선배들에게 배워가며 작업방법을 익힌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툴러도 하루하루 익숙해진다.

물론 아무리 쉬운 일도 몇시간씩 반복하다 보면 힘들고 지루하기도 하다.

흔히,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다람쥐 쳇바퀴 돈다는 표현으로 요약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기술직이든 그 일이 직업인 자에게는 어떤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지루함을 견디고 그 과정에서 익숙해지고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몫이다.


지루함을 참을 수 없으니 매일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떨까?


오, 참 재미있을 듯... 그러나 다른 의미로 그것은 결코 어떤 한가지 일에도 익숙질 수 없음을 뜻한다.

1만시간의 법칙이란, 바로 그 지루함과 고단함을 이기고 하루하루 익숙해지는 자만이 고도의 숙련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어떤 일에서든 숙련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매일 3시간씩 훈련하면 약 10년이 걸려야 1만시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에서든 적어도 10년은 계속해야 어느 정도 능숙해질 수 있다는.

✦1만시간의 법칙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이 걸린다.
'1만 시간의 법칙'은 1993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그는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와 아마추어 연주자 간 실력 차이는 대부분 연주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수한 집단은 연습 시간이 1만 시간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은 다른 수많은 논문과 저서에 인용될 정도로 심리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에릭슨의 연구를 인용하며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인용:네이버 지식백과]


새로운 직장에서 작업 뿐 아니라 내가 익숙해져야만 하는 상황은 또 있다. 어쩌면 그것은 주어진 업무만큼 혹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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